<안영진의 충청비사>충청 건아들 ‘한국의 기적’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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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4강의 감동에서 골프. 마라톤까지...

  • 승인 2006-03-23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1910년
첫발, 한국체육회 설립 80여년…
탁구. 유도. 사격 등 세계 10위권 자리매김
미국. 일본 등보다 투자기반 등 여건 열악
지역 사회. 지자체 등 선수 뒷받침 시급해

48. 코리아는 스포츠 강국


스포츠의 세기(世紀)라 했다. 세계의 눈은 독일의 월드컵과 엊그제 미국에서 치른 야구장에 쏠려 그야말로 흥분과 환호의 도가니였다. 월드컵(축구)에서 한국은 16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야구에선 세계 4강에 올라 공동 3위라는 신화를 창출해냈다. 한마디로 감격적인 장면들이었다. 한국을 30년은 견제하겠다던 일본을 보란 듯이 1, 2차전에서 제압하고 세계최강인 미국마저 꺾었다. 준결승전에서 일본한테 패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너무 잘 싸웠다.



21세기는 스포츠계절

21세기는 스포츠의 계절이다. 그래서 체육 입국(立國)이니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오고 국력은 스포츠에서 분출된다는 말처럼 이제 우리의 일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스포츠의 ‘여명’은 1920년대로 보는 게 옳고 개화(開化) 이전엔 운동이란 서민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그 시대 스포츠관은 다음일화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화기 때 한양주재 외국공관장이 휘하 직원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구기(球技)를 즐기는데 이를 본 우리 대신이 말하기를 “대감, 하인을 시킬 일이지 점잖지 않게 손수 공을 주우러 쫓아다니다니….” 라면서 쯧쯧 혀를 찼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한국체육회(조선) 설립, 80년의 나이테를 헤아린다.

이젠 우리 스포츠도 국력과 걸맞게 세계 10위권인데 그 증거로 올림픽과 세계대회에서 따낸 메달를 보면 알 수 있다. 올림픽 첫 금메달은 제11회 베를린 때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머리에 월계관을 썼다. 하지만 그때는 일제 치하에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기 때문에 국적은 일본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의 남승룡은 뒤이어 3위로 동메달을 땄다. 이때 동아일보가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태극기를 그려 보도한 게 발단이 되어 동아일보는 정간을 당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가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대회인데 여기서 동메달 두개를 건졌다.

그 후 제21회 몬트리올 때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목에 첫 금메달을 걸었고 그 다음 제23회 로스앤젤레스대회 때는 금 6개, 제24회 88년 서울대회 때는 금 12개를, 25회 바르셀로나에선 금 12개를 캐내어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굳혔다. 때론 일본, 중국을 따돌리고 스포츠강국의 중심에 우뚝 서기도 했다. 한국은 양궁, 태권도, 레슬링, 유도, 탁구, 사격, 배드민턴, 핸드볼 등에서 종횡무진 실력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동계올림픽 빙상 쇼트트랙에서 안현수, 진선유 두 선수가 남녀 모두 3관왕, 피겨스케이팅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천재소녀 김연아의 묘기에 국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또, 야구에서는 박찬호, 최희섭 등 대형선수가 야구의 본산 미국에서 활약 중이고 골프의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한희원, 미셀위 선수가 태양처럼 중천에 떠 있다.



챔피언은 민중의 偶像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세계대회 챔피언쯤 되면 세인의 우상(偶像)이요, 국가, 민족의 영웅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그래서 강대국들도 메달을 놓고 전쟁을 치르듯 필사적이다. 그것이 국가의 위상과 자존심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한국의 위치는 10위권을 오르내리지만 스포츠문화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점은 부인 못한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는 스포츠강국으로 탈바꿈해 일본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야기를 바꿔 지난 60년대 일로 기억한다. 전국고교 마라톤대회 때 일이다. 수백 명의 선수들이 각기학교의 명예를 걸고 질주하는데 제일 마지막에 ‘경기고등학교’ 선수가 들어왔다. 그 선수는 히죽히죽 장난기 어린 몸짓을 하며 들어서고 있었다. 등위여하(기록)를 불문하고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평들이었다. 천하의 명문, 경기고는 마라톤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듯한 그 표정….

“공부나 잘하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설령 공부벌레(?)라 하더라도 장난기 어린 그런 표정은 옳지 않다는 뒷말들이 무성했다. 옛날 사례지만 이제는 시대가 일대전환을 가져왔다. 선진국에선 황족이나 ‘화이트칼라’들이 앞 다퉈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 실력을 겨루는 게 보통이다. 땀 흘리며 뛰고 또 그것을 즐긴다. 일본의 귀족출신, 전 호소카와(細川熙護) 총리가 구마모토 지사시절 전국체전에 현(縣)대표(스키)로 출전했다 해서 신문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이 시대적 물결이다.



투자가 적으니 저변도 좁다

우리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스포츠 역시 이에 준한다고 자랑하지만 체육에 대한 진흥책은 아직도 열악한 상황이라 하겠다. 우선 야구만 해도 그렇다. 야구의 본산, 황금의 나라, 미국은 접어두고 라이벌인 일본과 비교할 때 할 말을 잊는다.

▲ 야구 = 일본의 고교야구팀은 4000여개, 프로구단은 17개에다 6개의 돔구장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고교야구팀 50개 교에 프로구단은 8개에 불과하다. 일본은 100년전부터 야구를 즐겨왔으며 30년대 ‘와세다’, ‘게이오’ 두 대학의 시합(早慶戰)은 일본열도가 들끓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우리의 프로팀은 80년대 겨우 창립을 했으니 “30년은…” 운운하는 일본선수의 말이 아프지만 느끼는 게 있다.

▲ 수영 = 올림픽에서 육상 다음으로 수영은 메달(44개)박스다. 일본수련(日本水聯) 등록선수 수는 물경 10만여명, 수중발레 선수는 1만명 선인데 비해 한국은 선수 3000여명에 수중발레 50명선이라면 거짓말로 들릴지 모른다.

▲ 축구 = 일본의 축구클럽은 2만2100개, 프로구단 31개, 선수등록 수는 70만명인데 우리나라 클럽 수는 초, 중, 고, 대, 프로구단(15개)까지 합쳐 718개, 선수등록 수는 2만명 남짓 수준(대한축구협회)이다. 이 수치로만 봐도 축구인구나 규모면에서 일본과는 큰 격차를 드러낸다.

그러함에도 우리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일본을 따돌리고 앞서왔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과 명승부 장면을 우리는 경기 때마다 지켜봤다.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마라톤의 황영조, 레슬링의 심권호, 탁구의 현정화, 프로복싱의 김기수, 유재두, 염동균, 홍수환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첫 세계챔피언 김기수와 ‘벤베누티’와의 주먹대결, 그리고 유재두가 일본이 자랑하던 와지마(輪島功一)를 때려눕히던 그 장면 등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홍수환도 4전5기의 혈투 끝에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찼던 당찬 선수였다. 유도의 하영주, 탁구의 유남규, 현정화 등 이루다 열거하기 힘들다. 외국의 예지만 그 유명한 떠벌이 ‘알리’와 ‘프레이저’, ‘알리’와 ‘포먼’의 엎치락뒤치락했던 세기적 대전은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했다. 떠오르는대로라면 레슬링의 역도산(가라테), 김일의 박치기는 전 일본열도를 뒤흔든 선수들이었다.



꿈나무 장학금과 ‘명격려사’

눈을 안으로 돌려 대전, 충남권의 스포츠 역사를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해왔으며 앞으로 대성할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14회 런던대회 때 한수안(복싱)이 동메달을 딴 바 있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선 이에리사가 우승,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탁구강국으로 떠올랐다. 또 마라톤의 이봉주는 올림픽 은메달을, 프로야구의 거성 투수 박찬호, 92년 바르셀로나대회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박장순은 현재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전다혜, 그리고 마카오 동아시아 볼링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최진아와 세계적인 여자 골프스타 박세리 역시 이 고장 출신이다. 미 LPGA 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장정, 사격의 강초현은 시드니 올림픽 우승자요, 펜싱의 김영호는 99년 오스트리아 국제대회 개인부문 1위를 차지했다. 또 이미옥은 90년 북경 아시아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여자마라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복싱의 염동균은 세계챔피언에 올라 한국의 주먹을 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한국이 스포츠강국으로 발돋움한데엔 이렇듯 대전·충남권 선수들이 골격을 이뤘다는 점에 우리는 긍지와 희열까지를 느낀다. 문제는 앞날이다. 이 기반을 어떻게 이어가고 또 진흥시키느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스포츠는 깡다구(뚝심)나 기분만으로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선수들의 뒷받침은 물론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수들을 격려하고 시상하는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치하(격려사)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수고했다’, ‘국가와 고장의 명예를 드높였다’ 등의 격려사로 분장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매우 직선적이며 실감나는 격려사를 들은 적이 있다. 계룡장학회 이인구(전 국회의원)이사장은 전국제천에서 선전한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계룡장학회에서는 14년 전부터 중, 고, 대학생 등 체육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해왔고 때로는 아시안게임, 세계대회우승자에게 격려금을 주기도 했다. 장학금 전달식에서 이사장은 스포츠의 존재이유와 진흥방향, 선수 육성, 그것이 국력과 직결한다는 점을 강조한 끝에 본론에 들어가선 한음계 억양을 높였다.

“ 선수 여러분! 각자 기량을 연마해서 큰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무한경쟁시대입니다. 그렇게 해서 1인자가 될 때 여러분의 운명은 바뀝니다. 그것이 출세 길이며 부(富)를 캐내는 코스가 되는 것입니다.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어요. 남들은 이인구를 돈 많은 사람(업계랭킹 22위)으로 알고 있지만 나의 연봉은 2억입니다. 헌데, 여러분이 정상에 오르면 연봉 수십억을 받을 수도 있고 분야에 따라 몸값을 수백억, 아니 그 이상을 부를 수 있습니다.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로 매진하기 바랍니다.”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였다. 이 격려사를 듣고 어느 인사는 ‘간결체 화법’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흔해 빠진 격려엔 면역이 되어 버린 세상… . 한마디로 이회장의 격려사는 폐부에 와 닿는 그런 내용이었다.

어떻든 선수와 꿈나무들의 사기는 국가와 사회가 드높여 줘야한다. 그리고 선수 저변확대, 유능한 지도자 발굴, 과학적인 지도, 종합적인 지원 대책과 투자를 할 때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투자한 만큼 메달을 건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또, 대전·충남권 출신 선수들이 빛을 발하는 데엔 선수 자신들의 노력은 물론 지역사회의 지원과 체육지도자와 경기연맹 임원 등의 노력 때문이기에 박수를 보내며 내일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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