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내용인 즉 70년 초 충남 당진 신촌 초등학교 4학년 2반 새 학년 총각 선생님 들어오시고 반 학생들 웅성웅성, 책상위에 올라가 의자 들어, 흑판엔 ‘사랑의 매’라 쓰고 상견례는 그렇게 끝나고, 그 후 숙제라곤 나누기 3문제 곱하기 2문제 연습 문제 아무것이나 선택해서 해오기, 학교 솔밭동산에서 손수건 돌리기, 1번부터 차례대로 나와 1분씩 자기 소개하기 등등 괴짜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는 시험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는데 선배들 얘기에 실력이 없는 선생님이라는데 또 5학년 2반 담임으로 또 만나다니.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담임을 바꾸어 달라고 항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들이 어른이 되면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화가 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어리고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내가 대학 다닐 때도 어느 교수가 시시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학생에게 백지 위에 선생님 모르게 아무 말이건 선생님이 복도에 나가있는 동안 쓰면, 들어와서 주문을 외우는 척 한 후 척척 마치는 것이었다.
요즈음 서울에서 동창들을 만나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선생님으로 열린 교육을 해주셨는데 자기들이 이해를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 선생님이라는 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변하여 인권이 존중되어 벌도 주기 힘든 학교현장이지만 나는 많은 모험 같은 일을 했다.
교실바닥에 3명밖에 못 들어갈 원을 그리고 다섯 세는 동안 못 들어가면 혼난다는 것, 어느 날 학교 울타리 안 교문 옆 관사에서 교장선생님이 자살하여 관사는 빈 흉가로 되고 밤이면 숙직실로 놀러오던 선생님도 무서워 안 오시고 나만 숙직을 대직하여 연일 밤 학교를 지켰다.
낮이면 달걀귀신 이야기를 한 후 학생들에게 담력을 키운다고 2명씩 그 낡은 관사 흉가를 들어가 5분 이상 있다가 나오는 모험도 시켜보았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넓고 넓은 세상 홀로 개척해 가는 용기 있는 학생으로 키우고 싶었다.
때로는 엉덩이가 파랗게 멍이 들도록 때리고 잠 못 이룬 적도 있었는데 그들에겐 지금도 용서를 빌고 싶다. 그들이 담임을 바꾸어달라고 했던 일이 실수라면 교육의 길을 걸어온 나는 더 많은 실수를 수 없이 했을 것이다.
오늘도 이름 모를 어딘가에서 제자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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