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설렌다. 물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것은 큰 기대치에 대한 자기 내면의 평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며칠 전 어느새 훌쩍 다 커버린 녀석들은 졸업과 함께 그동안의 간섭과 구속을 박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마치 모두가 내 세상인 양, 넓고 파란 저 하늘을 맘껏 날아다닐 듯 뻗쳐오르는 패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아이들은 아마도 한참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헤매다가 조금씩 조금씩 날개에 힘을 얻고 실수와 눈물 투성이의 상처를 영광스레 품은 채 각자의 길을 향해 더욱 정진하리라. 그런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삶의 거리를 활보하며 미래를 이끌 소중한 역량을 맘껏 키울 수 있길 다만 소망할 뿐이다.
나는 늘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 하나가 있다. 교사인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심어주었는지, 혹 그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영혼이 메마른 그런 교사는 아니었는지, 교문에 걸린 대학교 합격자 현황을 알리는 현수막만을 바라보며 말이다.
교육 경력 20여 년이 되어 가는 중견 교사로서, 나름으로는 직업적 소신을 펼쳐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바는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이며, 한없이 겸손해지는 일이며, 진리에 무릎을 꿇는 깨달음이다. 내가 비어지고, 내가 넘어지고, 내가 여지없이 부서질 때 온전한 내가 설 수 있음을 불 보듯이 환하게 느껴진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며, 버림으로 인하여 님께서 한없는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주심을 아나이다’ 라는 독백이 절로 터져 나온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새학기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내가 초임이던 19년 전의 일이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같이 앉은 어느 시골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는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저런 학교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교장선생님께 “교장선생님! 지금 근무하시고 계시는 학교의 학생들의 질이 어떠한지요?” 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 학교는 2차, 3차까지 학생모집을 해야 간신히 정원을 채우는 그런 학교였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미 어떤 대답을 하실 거라고 예상하고 던진 물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장선생님은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연스럽게 그것도 소신껏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학교 학생의 학력의 질은 다소 부족하나, 인간의 질은 매우 훌륭하지요.”
“아! 그러시군요.”
순간적으로 학력이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사람을 재단했던 내게 교장선생님의 대답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또한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는 수장(首長)을 보는 것 같아서 매우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그 교장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을 기억하며 ‘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부족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말이다. 그 이후로도 종종 이런 독백을 한다. ‘사람 됨됨이 자격증 100% 완성의 시대는 요원한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새학기 3월이 시작된 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그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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