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점인가 하고 들어갔더니 골동품은 아니고 옛 물건을 복각해서 파는 일종의 팬시(fancy)점이었다. 많은 물건 중에서 은촛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짧은 영어로 가격 흥정을 시도해 보았더니 점원은 빙긋 웃으며 “No”. 할 수 없이 정가표시대로 다 주고 말았다.
포장을 해서 여행자가방에 넣고 돌아다니는데 제법 무게가 나갔다. 물론 바퀴가 있는 가방이지만 어디 짐이 이것만 있어야 말이지. 한국에 가져올 선물을 다른 동료들의 사자 분위기에 휩쓸려 덜컹 미리 사고 말아서 이미 가방이 포식한 돼지처럼 배가 불룩한 터였다.
파리에서 로마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나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호텔에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때마다 미련한 처사를 후회했다. 선물은 마지막 기착지에서 사는 것이 정석인데 다시는 못 만날 연인처럼 덜컥 구애를 하고 말았으니.
은촛대가 나를 왜 매료시켰을까. 화려한 장미넝쿨문양의 은촛대를 어디서 처음 보았을까. 아마도 사춘기 때 신자도 아닌 신분으로 성당에 놀러가서 미사에서 본 것 같다. 붉은 불빛이 넝쿨처럼 휘어진 촛대가지 끝에 장미꽃처럼 주렁주렁 피어있는 모양이라니. 그 처음 보는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설레었던가 보다.
그 후로 유럽사극영화를 볼 때마다 심심하지 않게 은촛대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는 은촛대 소품에 나는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고 어른들 몰래 술을 훔쳐 먹은 소년처럼 마음이 붉어졌다. 옛 귀족의 식탁이나 서재에서 등장하는 은촛대의 불빛은 주인공들이 키스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나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심각한 대화에서 그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가리는 베일과 보조 상징의 역할을 하였기에….
한국에 돌아와서 시를 한편 썼다.
런던 시내/ 고풍패션 기념품점에선 산/ 여행자가방으로 끌고 다녀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파리에서도 로마에서도 땀 흘리며 후회를 했던 애물단지/ 그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으나 전달하지 못한 마음만/ 어쩌다가 자스민 향초에 태워보는/ 푸른 향기와 불빛이/ 은빛 받침대와 잘 어울리는 황홀한 협주곡/ 아마도 이 촛대의 원본모델은 어느 성당의 화려한 제단에서/ 수사들의 기도를 수없이 들었거나/어느 귀족가문의 식탁을 밝히는 은은한 아름다움이었으리/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흉내를 내고 싶은 콤플렉스가/ 촛대의 불빛으로 고전을 읽고 지식에의 사랑을 그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카드를 꺼내고 이 추억을 구매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서재에서 깊은 잠 속의 백설공주로 누워있는/ 그 누구에게 선물하고자 유럽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로 싣고 온/ 무거운 은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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