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일 정치행정부 차장 |
간호사의 사정도 비슷했다.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코올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30명, 광부들은 63~78년까지 7800여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우리 광부가 서독으로 떠날 무렵 필리핀의 1인당 GNP는 257달러, 한국은 79달러였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대전충남지역에는 ‘코리안드림’을 이루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수가 2만여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들이 한달에 버는 수입은 70만~90여만원. 이중 최소한의 식비 20만원을 떼고 나면 모두 본국으로 송금한다. 산업연수생제도 1년을 포함해 이들 노동자들이 국내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이다.
이 기간동안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이란 나라가 따뜻하고 인정있는 나라라는 것을 느끼고 한국생활에 안정적으로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본사는 외국인노동자들과 한국인의 1대1 자매결연 행사인 ‘호스트패밀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호스트중 한분은 자매결연 상대인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진다씨에게 주말 저녁 식사를 대접하려 했다가 진다씨가 일하고 있는 용문동의 아이스크림 공장 사장으로부터 만남을 거절당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잔업이 많다는 이유로 진다씨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고 만약 조퇴를 한다면 캄보디아로 추방시키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잔업근무를 시키고 외출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악덕고용주들과 외국인노동자들간의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과 앙금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호스트패밀리 행사와 같은 좋은 의미의 선행도 갈 길이 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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