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편집부국장 |
그런 자리를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심지사에겐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회견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니 그가 이룬 업적도 많고 눈에 띄는 공(功)도 많다. 최근에는 난제로만 보였던 도청 이전을 무리 없이 마무리함으로써, 그에게 붙어다녔던 ‘행정의 달인’이란 평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과제, 과오가 그에게도 왜 없겠는가? ‘14년 도지사’ 세월을 뒤로하고 떠나는 심경은 본인이 아니어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떠나는 아쉬움보다 그가 새로 걷기로 한 ‘다른 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앞설지도 모른다. 올 초 신당(新黨)을 창당한 그에게는 올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 도지사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미리 떠나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가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갈 길에 모아져 있다.
심지사는 95년 JP 휘하로 들어가 도지사 선거를 치렀고, 그 때부터 ‘정치물’을 먹기 시작한 셈이지만 도지사라는, 법적 권력(권한)이 보장되는 자리를 떠난 적은 없다. 그가 수행한 권한·권력도 일단은 모두 거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도지사 자리를 내놓은 순수 정치인 심대평에겐 보장된 권력 권한 권위는 이제 없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력으로 그것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정치인에게 권력과 권위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권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선거 때 받는 표(票)로써 결정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자연인으로 그가 가진 정치적 권위가 어떠한가 하는-즉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재는- 최초의 심판이다.
그는 그제 회견에서 “한국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굳은 결심으로 정당을 창당했으며 이제 충청과 이 나라의 정치현실을 바꾸는 전도사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정치인의 길을 가는 명분인 셈이다. 혹자들에겐 “할 만큼 한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드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정치인의 길에 나서면서 내건 목표는 이런 비판을 유예시킬 정도의 의미가 있다. 그가 내건 정치의 목표의 중요한 한 가지는 ‘지방분권화’다. 그것이 정략적 수단이나 일시적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면 어떤 비판이나 비아냥을 각오하고라도 정치판에 뛰어들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방의 문제’와 ‘지방분권’이 시대의 과제가 되고 있는 데도, 어떤 정당 어떤 정파도 진정으로 관심을 보이는 곳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 문제는 중앙의 기득 권력층이 아니라 심지사 같은 지방의 작은 권력들이 합쳐 이뤄낼 수 있는 과제일 것이다.
심지사는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하였고, 그 일차적 결과는 5·31 지방선거에서 나올 것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성패는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실패도 아름다울 것”이라는 한 전직 장관의 말은 옳고, 지금 정치인으로 본격 나서는 심대평지사에게도 어울릴 말이다.
심지사 정도라면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 하면 장관 자리하나, 아니 총리 자리라고 못 얻을 바 없다. 그러면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은 녹봉이 두툼하고 백관(百官)이 우러르며 더 명예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비록 골프 파문으로 쫓겨나게 될 신세에 처해 있지만, 분명 실세(實勢)였던 총리조차 이룬 게 무엇인가. 별게 없다.
항상 명분이 더 중요한 건 아니지만 심지사에겐 정치를 뒤늦게 시작하는 ‘공표된 명분’을 끝까지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그의 말대로 ‘정치실험’을 하는 이유를 마지막까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정치인 심대평’에게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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