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홍콩. 일본 참여 범 아시아 프로젝트
가벼운 멜로. 강렬한 액션… 영상미에 치중
#킬러=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4월15일. 첫 임무를 끝낸 다음날이었지. 그날 이후 거리의 화가인 그녀 주위를 서성대고 있다. 해맑고 순수한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내 영혼도 맑아질 것 같다. 데이지 꽃을 그녀 집 앞에 갖다 놓는 건 마음의 표현이다. 사랑하지만 나설 순 없다. 킬러에게 여자는 미끼거나 표적일 뿐. 내 여자라고 알려지는 순간, 그녀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녀에게 데이지 꽃을 든 한 남자가 접근했다. 누굴까. 그녀를 웃게 하는 저 남자는.
#화가=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같이 데이지 꽃 화분을 집 앞에 놓고 가는 사람. 데이지 꽃을 그리러 갔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졌었지. 이상한 일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다리가 고쳐져 있었고, 잃어버렸던 가방이 걸려있었다. 날 위해 다리를 넓힌 게 분명했어. 데이지 꽃 그림을 다리에 걸어 놓고 고마움을 전했지. 4시15분이면 어김없이 꽃이 놓인 것도 그 때부터였어. 누군진 모르지만 날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막 설레. 낯선 나라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보니 외로움이 컸나봐. 그 사람은 왜 꽃만 보내고 나타나지 않는 걸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앞에 앉은 남자, 손에 데이지 꽃 화분을 들고 있다. 지금이 4시15분인데.
#경찰=아시아계 범죄조직과 연계된 암스테르담 마약조직을 쫓고 있었지. 놈들 소굴을 잘 지켜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앞에 앉게 됐다. 그녀는 내 손에 든 데이지 꽃 화분을 보고는, 놀란 눈으로 화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거야. 매일같이 데이지 꽃을 보내주는 그 사람이 난 줄 알았던 거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난 침묵을 택했다. 그 사람이 나이고 싶다.
데이지의 꽃말은 ‘숨겨진 사랑’이다. 영화 ‘데이지’는 한 여인에 대한 두 남자의 숨겨진 사랑이 뒤얽히는 러브스토리. 류웨이장(劉偉强) 감독은 “인연으로 엮였으나 서로를 마주할 수 없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이국적 풍광을 배경으로 각자의 독백으로 전해진다.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 속 풍경은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음악이 대신한다.
세 남녀의 운명은 킬러 박의에게 경찰 정우를 암살 표적으로 하는 사진이 전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의 방점은 킬러와 경찰의 대결이 아니라, 박의와 화가 혜영의 멜로 라인에 있기에, 밀도 있는 심리 묘사보다 영상미에 자주 기댄다. 류 감독은 멜로는 가볍게, 액션은 강렬하게로 나누어 스타일리시한 화면을 꾸몄지만 둘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데이지’는 태생부터 아시아, 나아가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 곽재용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홍콩의 류 감독이 흔쾌히 연출을 맡았고, 한국의 톱스타들과, ‘스파이더맨 2’의 임적안 무술감독이 참여했다. ‘화양연화’의 음악감독 일본의 우메바야시 시게루도 가세해 범 아시아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전지현 정우성 파워가 아시아 팬들은 극장으로 불러모으겠지만, 과잉의 감상주의가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를 따라 잡을 수 있을지는. 글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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