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 개통되는 대전 지하철.
그 동안 지하철 건설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교통체증과 상권 위축 등 각종 불편함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협조해준 시민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 건설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린 이들도 많다.
우선 지하철 건설본부의 모태가 되는 대전시 지하철건설기획단이 그들이다.
초대 단장 김덕중(작고)씨는 94년 1월부터 그해 4월 말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전 지하철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도시철도건설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들의 공청회와 1호선 기본설계 용역을 발주했다.
김 전단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송일영 본부장은 95년 5월까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설계용역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3대 김은배 본부장은 95년 7월부터 97년 말까지 지하철 건설의 수장으로서 지하철의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우선 1호선 토목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한 것을 비롯해 1호선 노선을 지정했다. 96년에는 1호선 10공구의 착공으로 역사적인 첫삽을 뜨는 행운을 잡았으며 1호선 2단계 실시설계 용역을 시작했다.
심영창 4대 본부장은 98년 연초부터 99년 9월까지 21개월동안 지하철 건설의 안정성과 시민편의 도모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냈으며 신만섭 5대 본부장은 2003년 7월까지의 임기를 통해 2단계 건설사업계획승인을 받아내는 공을 세웠다.
신 본부장은 1호선 운영시스템 공급설치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1호선 2단계 전공구(10개 공구)에 대한 착공을 실시했다.
종합사령실을 착공했으며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절약하기 위해 민자유치분야 리스 및 도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1호선 1단계 판암차량기지 궤도부설공사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때다.
올 1월초까지 본부장을 지낸 6대 이강규 본부장은 전동차의 디자인을 확정(2003. 12)했으며 1호선 2단계 외삼차량기지 및 본선 궤도부설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
지하철 공사가 막바지를 향해 질주하던 지난해 7월 이 본부장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진땀을 빼야 했다.
그 해 7월 1호선 제8공구 용문동 일대에서 공사 후 침수현상이 나타난 것.
아무리 조심하고 완벽하게 하려해도 참여업체도 많고 관리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상황에서 어쩌면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사 입장에선 주택과 상가 건물에 물이 차오르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을 게다. 지하노래방을 비롯해 식당, 교회 지하 예배당, 동사무소 자재창고까지 침수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피해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게다.
이 때 이 본부장은 주민들 달래랴, 공사 업체 다그치랴, 보다 철저한 관리감독 주문에 피말리는 여름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때 아닌 ‘물 난리’를 겪은 이 본부장은 이를 무사히 잠재우고 지난해 말 1호선 1단계 공사를 마무리시키고 김광신 7대 본부장에게 개통에 따른 업무를 맡긴다.
하지만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 역시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하철 역사의 시각 조건이라든가, 보다 쾌적한 역사 조성, 시민 편의 도모, 전시 작품 설치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활용, 역세권 활성화 방안 등 챙겨야 할 소프트웨어가 한 둘이 아니다.
올해 초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7대 본부장 김광신씨는 현재까지 도시철도의 안정성과 시민편의, 역사 관리 등 지하철 개통에 관한 모든 사항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김 본부장은 “개통일을 확정하고 난 후부터는 이런 저런 걱정에 밤잠까지 설친다”고 말할 정도로 지하철 개통에 말 그대로 ‘올인’해 왔다.
때로는 시민들의 비난에 힘겨워하고 때로는 착실히 진행되어가고 있는 지하철 각 공구를 둘러보며 뿌듯해했을 이들이 없었다면 대전의 지하철 시대는 요원하지 않았을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