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비가 진눈깨비로 바뀌어 휘몰아치는데도 교실 창문을 활짝 열고 나를 기다리는 래호의 아우성이 교문을 넘는다.
겨울 방학이 채 끝나기 전, 중학교 배정 통지서를 받으러 와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아이들은 한시가 급한가 보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통지서를 나눠주는 시간,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기대 한 움큼, 두려움 한 움큼이 들어 있다. 일 년 동안 나를 향해 있었던 초롱초롱한 저 눈빛, 문득 이 눈동자를 꼭 붙잡고만 싶어진다.
어느새 중학교 쪽으로 닿아버린 저 사랑의 빛을 말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별에 대해서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아이들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이들과 이별하는 것에 대해 아직 서툴다. 교사가 되어 치른 몇 번의 졸업식에서 모두가 돌아간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엉엉 울기만 했었다.
이제 교사가 된 지 꼬박 6년, 그동안 6학년 담임을 세 번했으니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쏟아 부은 정성만큼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가오는 졸업식, 아이들은 요즘도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길거리를 활보(?)하곤 한다.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졸업식에서 밀가루는 참 오래도 버틴다 싶다.
디지털 세대인 아이들은 졸업 선물로 MP3 플레이어, 휴대 전화,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첨단 기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입학과 졸업을 기념하는 최고의 선물은 책이라고 믿고 있는 아날로그 세대의 선생님이다.
이러한 아이들과 내가 조화를 이룬 멋진 졸업식, 그리고 그 이후의 소중한 인연을 위한 준비로 남은 시간이 분주해질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답사를 읽으며 하염없이 울었던 경험을 떠올리니 아이들에게는 어른들과는 다른 또 다른 감동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졸업식에서 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아이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뜻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 주었기에 미안함과 부족함은 이제 그만 덮어두려 한다.
아이들아, 사랑한다! 이곳 중원에서 함께 꾸려온 2005년도는 나에게 행복이었고 축복이었단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지내온 시간이 추억으로 남아 아무 때나 꺼내어보아도 힘이 될 수 있기를, 서로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거친 세상에서 아름답고 귀한 사람이 되기를 여기서 이렇게 조용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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