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용 기자 |
“당(黨) 몰락하면 다른 당에 붙어”
김학원, 장사안돼 폐업하고 취업?
JP가 자민련(자유민주연합)으로 이름을 지을 때 자유민주 ‘당(黨)’으로 하지 않고 ‘연합’을 붙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黨)은 무리를 뜻하는 것이지만 모였다가 흩어지곤 하는 좋지 않은 의미도 있어 당이 오래 가라는 뜻으로 ‘연합’을 썼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현존하는 당 가운데는 최장수(11년) 정당이었다.
그러나 마침내는 제1 야당 한나라당에 통합되면서 당 간판을 내렸다. 당(黨)은 한때 성(盛)했어도 쇠잔해지고 소멸하는 게 고금의 이치다. 그리고 당이 없어지면 그 당의 무리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거개는 다른 당(黨)에 들어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 또한 고금이 같다.
조선 후기 이건창(李建昌)이 쓴 조선 시대 당쟁사(黨爭史) ‘당의통략’(黨議通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소북(小北)은 능히 자립할 수가 없어서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에게 많이 투항하여 붙었다.’ 광해군 때 집권세력 대북(大北)파가 인조반정으로 권력에서 축출되고, 서인(西人)이 집권하면서 소북의 잔존 세력들이 집권 세력에 가 붙은 것을 말함이다. 권영원 대전시사편찬위원은 “붕당 사람 중에 당의 성쇠에 따라 이렇게 당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과거에도 8할은 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체로 6할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구히 지속되는 당(黨)은 없으므로 정치(벼슬)를 하려면 당을 만들든지 옮겨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을 잘못 옮기면 나온 당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옮겨간 정당에서도 대우를 못 받게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때문에 당을 옮기는 일은 정치인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험하고, 때론 정치생명을 거는 일이다. 최근묵 교수는 서인(西人) 스승 박순이 실세(失勢)하자 그를 배반하고 동인(東人)에 붙어 벼슬을 하다 정적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다 숨진 정개청(鄭介淸)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정당 옮기기’는 오늘날에도 부정적 평가를 받기 쉽다. 선거 때마다 당의 성쇠 기미를 보아 그 지역에서 가장 유망하고 인기 있는 당을 좇아 자주 옮겨다니는 사람을 ‘정치철새’로 부르며 조롱한다. 나 또한 2년 전쯤 ‘야당 자치단체장들의 잇따른 여당행(行)’을 비판하면서 ‘권력의 양지만을 좇는 아첨꾼’으로 평가했지만 보완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정당을 언제 어떻게 옮기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지만 현실적으론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정당들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면 정치인들은 싫든 좋든 당을 옮겨다니는 게 불가피한 일 아닌가. 또 금배지 달고 있는 사람이 본인의 당이 없어졌다고 금배지 반납하고 집에 가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학원 대표의 한나라당 행(行)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당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서 내린 결정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 새 당을 차린 옛 동지(同志·심대평지사)의 뒤를 쫓아가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었고, 또 떠날 사람 모두 떠나 보낸 뒤 혼자 짐 꾸려서 다른 당의 문을 두드린 것이니 큰 하자는 없다. 20일자 중도일보 만평 그림처럼 ‘(장사가 안 돼) 폐업하고 회사(한나라)에 취직하는 것’쯤 아닌가. ‘큰 회사’에 취직은 됐지만 일단은 ‘자영업’에 실패한 패자(敗者)다.
자민련 소속 자치단체장들의 이해는 어떨까? 한나라와 통합으로 큰 고민을 던 이는 가기산 서구청장이다. 그는 대전에선 ‘장사’가 잘 될 듯이 보이는 한나라당을 맘에 두고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는데 입당 명분을 얻은 셈이다. 구청장 공천 여부와 가청장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지만 이젠 상전(上典)으로는 모실 수 없는(?) 이재선씨와의 관계 정립도 주목된다. 김성기 중구청장의 경우는 구청장 공천권을 가진 강창희씨가 반기는 입장인지가 궁금하다. 김무환 부여군수는 평소 ‘(공천을 해주었던 은인인) 김(학원)대표가 어디로 가든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의리론’(義理論)을 폈다 하고, 공천권을 가진 김 대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니 문제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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