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 논설위원 |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말해온 대통령이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를 강조한 신년연설에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문제는 없었다. 혁신을 말하는 자리에 지방혁신은 입도 떼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지방권력 10년은 썩었다’고 돌려서 말한 게 전부다. 지방이 잊혀지고 있는 거다.
중앙정치는 한 술 더 뜬다.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 10년을 말아먹을 악법이라는 데도 들은 체도 않는다. ‘중앙정치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는 속내는 뻔하다. 중선거구제, 정당공천제, 기초의원 유급화 그 각각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그러나 이 셋을 세트로 묶으면 한 가지다. 중선거구제의 4인 선거구를 쪼개면 지역구도가 확고해진다.
여기에 정당공천이 더해지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다. 월급까지 준다. 지방정치를 손아귀에 넣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장치로 완벽하지 않은가. 지역구 국회의원 집 앞에 정치지망생들이 줄을 섰다는 보도다. 술잔을 세는 것도 아닌데 ‘1, 3, 5, 7’이란 말도 들린다. 기초의원 공천에 1억원, 광역의원 3억원, 단체장 5억∼7억원이란 얘기다.
당근(돈)과 채찍(공천)에 의해 이제 지방자치는 무늬로만 남게 됐다. 단체장들과 지역 의원들이 국회의원의 손에 놀아나는 인형에 지나지 않게 됐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중앙정치의 오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행정구역을 개편하잔다. 16개 광역시 도를 인구 30만∼100만명 규모의 준광역자치단체 60∼70개로 쪼개자는 거다. 광역 기초로 돼있는 중층구조를 단층화하면서 기초단체장은 임명제로 하고 기초의회는 없앤다.
광역과 기초단체간 중복에서 오는 낭비와 비효율이 줄고, 행정구역과 주민생활권이 어긋난 곳도 바로잡을 수 있단다. 중요한 건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없앨 수 있다는 거다.
세계는 거꾸로 가고 있으니 어찌된 건가. 일본은 17일 우리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도도부현’ 47개를 9∼13개로 묶어 초광역화하는 ‘도주제’를 총리에게 건의했다. 영국은 단층제에서 복층제로 복귀했고, 프랑스는 복층제에서 3층제로 다층화했다. 그게 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 라는 거다.
우리가 잘못된 건지, 세계가 멍청한 건지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지방 분할은 필연적으로 중앙의 통제 강화를 불러온다는 거다. 주민자치, 생활자치는 끝이다. 국회의원보다 힘센 광역단체장도 싹 없어진다. 누굴 위한 행정구역 개편인지 알 만하다.
세계는 세방화(Glocalism. 세계화+지방화)를 추구하는 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려는지 알 수가 없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가 바로 세계화다.
지방자치, 지방정치를 지키기 위해선 결론은 하나다. 무엇보다 중앙정치의 입김을 막아야 한다. 원론적 대안은 정당공천제를 없애는 거지만 이번 선거는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무기화하는 수밖에 없다. 당장은 선거에서 당은 보지말고 사람을 보고 투표해야 하는 거다. 지방정치는 국정과 달라서 집행부와 의회가 같은 당이어선 견제와 감시가 어렵다는 걸 기억하자.
그리고 지방의 반란을 준비해야 한다. 중앙의 권력, 중앙의 정치, 중앙의 인물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 지방분권 운동을 조직화하고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과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제안해야 한다. 지방분권을 거부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을 찾아내 ‘처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방이 살고 나라가 산다. 그렇게 해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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