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용기와 인내심을 키워주기 위해 가족소개, 수수께끼, 3분 스피치 발표, 창의력을 위해 이야기 꾸며하기 등을 가르치며 가끔은 벌도 주고 매도 심하게 때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순하고 귀여움만 받고 의지하는 학생이 아닌 스스로 견디고 해결해 가는 용기 있는 학생이 되기를 원했던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엄한 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늦게까지 아이들에게 벌을 주고 있는데 부모님들이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그만 용서해주세요.”
그 중에는 나이가 드신 이연희 학생의 어머니도 계셨다. 연희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아주 많이 받는 귀여운 학생으로 생각했었다. 그 후 연희는 인근 중학교를 졸업하고 호주인과 결혼한 언니를 따라 호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들은 후 부모님의 집으로 전화해 연희의 주소를 알아내고 외국에서 외로워 할 연희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띄웠다. 뜻밖의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받고 기쁘고 외로운 마음을 담은 연희의 답장이 도착했다. 그 후 우리는 가끔 편지를 주고 받았고 귀국하면 연희가 찾아와 만나기도 하였다.
“이곳은 함박눈이 없어 싱거울 따름이죠. 저는 형부 회사에 출근하고 있어요. 선생님 편지를 받으면 옛날 생각하느라 바빠요. 고향산천이 그리울 때면 선생님 편지를 읽어요. 저는 시드니를 벗어나 포트 맥퀘리에 친구와 있습니다. 일몰이 장관을 이루고 야자나무에는 새들이 합창을 하고…. 선생님은 어떻게 학교 일과 대학원 공부를 함께 하고 계신지 자랑스럽고 그런 선생님이 저한테 있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그 후 연희는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소식을 비롯해 대학입학과 두 남자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몇 차례 편지를 주고 받던 어느 날 호주에 있는 연희의 언니로부터 예기치 않은 편지가 도착했다.
“연희가 장래 반려자를 택하는데 일단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는 마음으로 사귀며 형부와 언니의 의견을 존중하라는 편지를 선생님께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연희는 선생님 말씀을 누구보다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편지한 것은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후 연희는 한국 전통예술계에 종사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국내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나의 그림 전시회 팸플릿을 두 번인가 보낸 후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30여년전 제자 연희,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했던 신촌초. 운동회 덤블링 가장행렬, 성동산 소풍, 학교 동산 솔밭 등등 추억을 간직한채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