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대석] 현대무용 ‘포피’로 본 장 콕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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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석] 현대무용 ‘포피’로 본 장 콕토의 삶

  • 승인 2006-02-20 00:00
  • 최성옥  충남대 무용학과 교수최성옥 충남대 무용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도 홍모씨의 커밍아웃 이후 최근의 왕의 남자까지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벽장 밖으로 나오게 된 것 같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장 콕토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 서양 예술의 중심지이자 데카당한 욕망과 열정이 묻어난 파리를 무대로 하여 삶에 부대끼고, 사랑에 상처받고, 환상에 시달리며 아편으로 일시적인 위안을 구하는 다재다능한 천재 예술가 장 콕토의 삶을 시드니 댄스 컴퍼니의 예술감독인 그램머피(Graeme Murphy)가 현대무용으로 안무한 ‘포피(poppy:양귀비)’ 공연을 잠깐 소개하고 싶다. 이 작품은 1978년에 초연돼 극찬을 받았다.

공연은 2막으로 구성돼있으며 1막에서는 콕토의 유년시절부터 사교계 시절, 라디게의 죽음을 다뤘으며, 동성애와 아편중독에 초점을 맞춘 제 2막은 요양소의 침대에서 죽음의 환상에 시달리던 콕토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메인커튼이 위로 올라가면서 조각품처럼 세워놓은 양귀비꽃이 3열로 엇갈리게 배치돼있는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양귀비꽃 사이로 콕토의 어머니인 젊고 우아한 부인과 어린 소년이 각각 꽃에 취해 있는 모습이 별 큰 동작 없이 펼쳐진다.

제2장은 리세 콩도르세 재학 시절 콕토가 핸섬하고 조숙한 남성적인 소년 다르겔로에게 끌리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콕토의 동성애적인 성향이 이미 소년시절에 싹트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무대의 왼쪽 한구석에 설치된 파리의 물랑루즈와 같은 유흥가의 분장실에 조명이 비추어지며 한명의 남성무용수와 2명의 여성무용수가 어울려 그 시대 파리장들의 데카당한 분위기를 잠깐 동안 집약해 내는 것으로 제3장은 시작된다.

제4장에서는 콕토와 러시아발레단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3명의 남성무용수가 각각 댄서로서, 영혼으로서, 그리고 안무가로서의 니진스키가 되어 각기 다른 춤을 춘다. 샤막이 내려오고 ‘날고 있는 새’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무대 천장에서 로프에 등을 매단 니진스키가 무대 위를 날듯 점프하면서 춤춘다.

제5장은 콕토가 후견인 역할을 했던, 젊은 시인이자 14년 연하의 애인인 미청년 라디게와 네모난 큰 거울 앞에서 사랑의 듀엣을 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술과 장티푸스로 죽어가고 있던 라디게에게 검은 원피스를 입은 죽음의 천사가 등장하면서, 콕토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라디게와 라디게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콕토,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죽음의 천사가 한데 어울려 3인무를 추게 된다. 마침내 라디게가 쓰러진 후에 라디게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렬을 이루면서 제1막이 끝난다.

제2막은 제1막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편 중독자 요양소의 침대에 누워 간호사들의 간호를 받고,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죽음의 천사와의 실랑이를 벌이며 환시와 환청 속에서도 삶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던 콕토를 무대스크린의 영상 속에서 연출했다. 흰 양복으로 빼입은 남성무용수가 콕토와 춤을 추는 동안에 죽음의 천사인 검은 옷의 여성무용수가 나와서 그 둘 사이를 감싸며 춤춘다. 이어 무대에는 대형 스크린이 나타나고 콕토가 감독한 영화장면들이 무질서하게 뒤죽박죽이 되어 나타나고 그동안에 등장했던 여러 무용수들도 춤을 추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하며 무대는 온통 사이키델릭한 환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다가 스크린의 영상이 꺼져버리고 거울 옆의 대형 촛대 위에는 등불이 켜지며, 무대의 메인 커튼이 서서히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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