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함. 걸쭉한 풍자는 아쉬워
NG. 촬영 비하인드 ‘즐길거리’
나, 윤서라 하오. 이녁들이 ‘음란서생’이라 부르는 사람이외다. 적
놀랐을 거외다. 내 소설 ‘흑곡비사’는 규방 아녀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맨 뒷장에 소감문을 남겼다오. 이녁들 세상에서 만든 줄 여기는 인터넷 용어, 이른바 ‘야설’(야한 소설)이며 ‘폐인’ ‘댓글’ 등이 내 시대에 이미 다 만들어진 거라니 놀랍기도 할거요. ‘야동’(야한 동영상)도 물론이요. 그러니 누가 뭐라든,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였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소이다.
사람들은 광헌이가 그린 삽화 덕이 컸다고 입방아 찧지만 모르는 소리지요. 대본소 주인 황가가 그랬소이다.
“‘진맛’이란 무엇이냐. 꿈꾸는 것 같은 거. 꿈에서 본 거 같은 거.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거.” 그 ‘진맛’의 경지가 담겨야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오.
‘진맛’을 느껴보려 온 정열을 다 쏟았소. 새로운 체위를 구상하고 시연도 해보았소.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 정빈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이치를 깨닫게 되었소이다. 글 속에 진맛이 담겼으니 한 줄만 읽어도 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하는 대박소설이 됐던 거지요.
궁금하실 거외다. 공맹의 도리를 공부하는 사대부집 선비가, 조선 제일의 문장이라 추앙받던 서생이, 어쩌다 야설을 쓰게 됐느냐.
일전에 정빈의 그림이 뒤바뀐 사건이 있었소. 수사를 하다 저잣거리 그릇가게를 들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해괴망측한 빨간 책
밤마다 수십 장의 파지를 내며, 때론 구름이 일어나듯 가랑비가 흩뿌리듯 부드럽게, 때론 먹구름이 몰려들고 소나기가 퍼붓듯 격정적으로, 운우지정을 그려냈소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처럼 설레어 밤을 새웠소.
그래서 말인데, 영화를 보되 ‘음란’은 표현의 방식으로만 보고, ‘서생’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오.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하다는 거, 얻은 게 있으면 잃기도 한다는 거.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았을 거외다.
김대우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주고 있는 것 같아 고맙소. 그렇소이다, 나는 당대 조선 제일의 문장가였소. 맛깔스럽고 우아한 대사, 한석규의 깨끗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군더더기 없는 대사는 내 문장의 격이 그대로 살아있소.
하지만 내가 누구요. 품격과 학식을 두루 갖추고도 야설 창작에 빠져든 사대부라는 전복적 사람아니요. 그렇다면 ‘음란함’ 못잖게 사회의 금기를 시원스레 깨부수는 걸쭉한 풍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게 없으니 아쉽소이다. 감독 쯤 되면 하고 싶은 말이야 많겠지요. 그렇다고 다 할 수는 없는 거잖소. 이야기를 다 들려주려다 보니 너무 늘어지지 않았소이까.
참,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진득히 기다리시라고 하오. 재미있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소이다. 23일 개봉, 18세 관람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