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문학은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으나 작가들과 전문독자인 평론가 대학강단으로 이루어진 문단 내에서는 자체의 소통구조를 가진 문학입니다. 시장에서 교환이 되지 않는 문학을 위해 정부는 문예진흥기금이라는 기초예술지원금을 만들었습니다. 정부가 기초과학을 위해 정부출연금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결정한 배후에는 기초예술의 육성이 사회전체의 성장잠재력에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문예진흥원에서 관리하던 문예진흥기금을 문화예술위원회로 이관하고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기획아래 사업계획이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그 중에서 지역사업에 해당하는 기금은 지역자치단체에 이관해 사업을 주관하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문예기금의 문학지원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유형무형의 수많은 문학단체가 있고 이들의 사화집을 일년에 한번씩 묶어내도록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문학의 진흥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중앙정부처럼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지역문화예술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선택과 집중에 의한 문예진흥정책이 이뤄져야 합니다.
근래에 한국영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연출과 감독 시나리오가 매우 세련된 결과입니다. 영화는 환상을 연출하는 종합장르이고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인들의 작품에서 영감과 이미지를 많이 차용합니다. 아는 시인이 자신이 ‘사랑예감’이라는 시집을 냈더니 광고와 영화계에서 ‘…예감’이라는 코드로 확산되더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작권으로 아이디어를 보호받기가 곤란하므로 문예진흥기금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합니다. 21세기는 문화 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고 그 배경에는 순수창작가들의 다양성과 깊이가 있는 영감과 환상이 있습니다.
문학은 외롭고 고독한 싸움입니다.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작가는 세계(타자)의 영원성에 직면하거나 결핍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실존과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언어는 일견 무력해 보이나 인류의 정신문화를 만들어낸 위대한 도구입니다. nothing을 주장하는 자연에 대해서 anything을 주장하는 끝없는 욕망이고 문화입니다. 이 환상이 인간만이 가진 거대한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작가들의 땀과 정열이 한국민족문학의 장에서 문학을 연금술사의 빛나는 돌처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새로운 환상을 지역사회가 끝없이 격려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인도를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작품과 바꾸지 않겠다는 서구세계의 오만이 있듯이 우리도 한국문학에서 추사 김정희나 만해 한용운의 작품이 동양문화를 상징하도록 사회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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