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대로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의도가 강력한 중앙정부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데 있다면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지방자치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가 마련 중인 이 개편안의 골자는 시·도를 폐지하고 시?군?구를 통폐합해 인구기준 100만 명 이하의 광역단체 60~70개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기본법이 통과되면 현재 시도-시군구-읍면동의 3단계로 돼 있는 지방행정체제가 2010년 7월부터 2단계로 줄어들고 시·도지사 선거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이 중요한 법안이 TV나 일간지에서 그리도 간단히 취급된 점도, 그리고 모든 면에 반대 입장을 내세우기 일쑤였던 여야가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 보통사람 눈에는 수상하기만 하다. 행정도시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를 친 연후 이제나 적당히 ‘재단’된 도시의 실체에 익숙해져 가는 마당에, 그러면 요 며칠 지면을 요란하게 장식한 충남도청 이전계획은 이 법안에 의하면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게 아닌가? 도지사가 없는 도청? 이번엔 굳이 위헌재판소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답은 뻔해 보인다.
민주주의에 있어 지방분권은, 그 체제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제도이기 이전에 그 체제를 생성해낸 가장 주된 버팀목이다. 시민들의 의견과 결정을 수렴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그 것이기 때문이다. 학업 때문에 장기간 체류한 프랑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방분권의 개념은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부터 시작된다. 1789년 말 혁명공회는 프랑스를 파리와 80개의 데빠르트망(지역·departement)으로 나눈다.
그 당시 벌써 법안 제안자인 투레(Thouret)의 지리적 분할과, 이에 반대해 각 지역의 역사 유산과 과거의 지역개념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미라보(Mirabeau)의 의견이 의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점은 2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우리 국회의원들이 현재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유의하여야 할 점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과 연이은 왕정복고, 그리고 근대에 수많은 전쟁 상황들은 지방분권의 순조로운 정착을 때때로 지연시키기는 했지만 절대로 그 큰 흐름을 역류시키지는 못한다. 현대에 들어와 1968년의 학생혁명과 1981년의 사회당 정부집권은 지방분권으로의 흐름에 박차를 가했고, 현재도 집권당의 색깔구분 없이 이 대세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거론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처럼 몇 사람이 밀실에서(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국민들에게 배포된 정보의 양은 이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교롭게도 요즈음 중앙일간지를 도배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능과 부패 양상을 드러내는 기사들은 사전 언론정지(整地)작업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더욱이 여기저기 수군대는 것처럼 대권을 꿈꾼다는 몇몇 시·도지사들의 위세(威勢)를 애초에 거세하려는 의도가 이 법안의 동기가 됐다면 정말로 크게 우려할 점이다.
현행제도를 고쳐야 한다면, 본래 그 권한이 비롯되는 국민 모두에게 그 상세한 내용을 알리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 대표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의무다. 그 역할을 거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정치인들이 숙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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