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코흘리개 아이들은 엄마 손에 이끌려 먼길을 걸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예비소집을 다녀왔다.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 2반이고, 전교생이 600명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조회 시간이 되면 6학년 형의 힘찬 구령에 따라 전교생이 나란히 도열하였고, 뒷줄에서 장난치던 개구쟁이에게는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교장선생님의 훈시 내내 아이들은 몸을 배배 꼬면서 옆줄 아이와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다시 교실에 들어서면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 하나를 불러 손톱 검사, 손등의 때 검사를 하곤 했다. 아이들 손에 쥐어진 육성회비 400원을 마련하기 위해 어른들은 독 안의 콩을 퍼 자루에 담아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학교에 가면 풍금치는 예쁜 손의 여선생님 뒤로 아이들이 모여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점심시간이 되면 소사 선생님이 학급마다 돌며 마른 밀빵을 나눠주었다.
휴일이 되어 트럭이 한 대 마을로 미끌어져 들어왔다. 트럭 조수로 마을을 떠난 마을 형이 이제는 어엿한 트럭 운전사가 되어 끌고 다니던 트럭을 몰고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아이들은 트럭 주변에 모여들어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트럭이 마을을 떠날 때면 새까만 매연 뒤로 꼬리를 물고 마을 어귀까지 달음질하여 트럭을 뒤쫓아갔다. 어느새 초가지붕이 걷히고, 형광등 불빛이 슬레이트 지붕 아래를 밝게 비추더니, 경운기가 한 대씩 들어와 쟁기와 달구지를 대신하고, 마을 앞길이 포장되었다. 4~5km나 되는 먼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준 삼천리 자전거를 밟고 신나게 학교까지 몰았다.
젊은이들이 짐을 싸 하나씩, 하나씩 희망을 찾아 도시로 떠났다. 운동장에서 재잘대던 아이들도 남은 아이들의 부러움을 뒤로 한 채 부모를 따라 도시로 떠났다. 한 학년 2반에 전교생 600여명이 되던 학교가 한 학년 10여명, 전교생 5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당국으로부터 폐교 결정이 내려졌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폐교된 고향의 초등학교.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구교사, 지금은 작게만 보이는 2층 신교사, 아담한 지붕의 교장 관사, 운동장의 수도꼭지, 벽돌로 지어낸 화장실, 철판을 두른 창고, 탱자나무 울타리. 모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이제는 정돈되지 않은 운동장에는 잡풀이 우거져 있고 낙엽만이 뒹굴고 있다.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우연히 그곳에 들러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온 동산을 벌겋게 물들인 진달래꽃을 반기며 동네친구들과 하루 종일 들과 산으로 뛰어 다녔다. 텔레비전도 파아노도 없었고, 영재교육도 영어수업도 없었다. 그저 노닐다가 저녁이 되면 멀리서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 소리에 흙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달음질쳐갔다.
지친 몸으로 학원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고향의 봄이 오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흘러가는 세월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봄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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