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과서 같은 사례 중 오늘은 독일 중북부 도시 카셀(Kassel)의 성공을 예로 들며 글을 전개할까 한다. 도시 전체가 마치 동화박물관 같은 카셀은 문화의 시대를 넘어 문화전쟁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세계문화의 광장으로 나가는지의 힌트 하나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림형제의 동화가 씌어진 그곳의 고성(古城)을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이 튀어나올 듯이 느끼게 하는 힘의 근원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인간의 손, 땀과 노동이 소외되지 않고 창조적인 머리를 기반구조로 태어나는 문화의 특수성을 존중한 것에서 찾아진다.
사실 근자의 문화정책은 순수한 문화예술 자체보다 경제활동으로 경도된 감이 있다. <쥬라기공원> 한 편이 자동차 150만대 수출 효과와 맞먹는다며 종종 로또사업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고 일견 틀린 말이다. 후자의 경우는 주로 문화산업의 방점(傍點)이 '문화' 아닌 '산업' 쪽에 찍혔을 때에 해당한다.
산업인 이상 문화와 산업이 짝짓기한 문화산업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속성으로 한다 치더라도 스타 중심의 말초적으로 비대해진 문화와는 다르다. 아니, 분명히 달라야 한다. 일례를 들어 개발 위주의 관광이 문화와 상충하게 되면 표방하는바 문화관광의 노른자위여야 할 문화가 실종되고 결국 관광마저 껍데기로 만들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또 하나 범하기 쉬운 오류는 문화는 유적지에나 있고 예술은 공연장과 전시장에만 있으며 경제만 발전하면 문화는 저절로 산출된다는 식의 착시다. 이런 토양인지라 우리가 숨쉬는 환경 모든 것이 문화이며 문화상품의 소재라는 안목을 가져볼 여지도 없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글머리 혹은 말끝마다 문화의 세기니 문화가 밥 먹여준다고 공언하면서 기실 게걸음치거나 거꾸로 가는 반문화성은 심하게 비유해서 밥그릇을 차 버리는 행위다. 본의든 아니든 관(官)의 지원과 간섭이 부른 관성화가 무한히 다양해야 할 문화예술을 주눅들게 하고 사업성을 그르친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이러한 반성을 전제로, 지난날 우리 경제 위기를 "문화적 독창성을 개발하고 선전하는 데에 실패"한 데서 찾은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의 진단은 정말이지 탁견이란 생각이 든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드는 문화의 체질을 인식론적 다원성으로 되짚어낸 것이기도 하다.
문화와 예술은 장르간 고른 발전 속에 꽃피게 된다. 특정 주류문화를 뺀 비주류문화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문명의 황야에 버려 두고, 예술은 산업이요, 문화는 경제라는 등식을 철저히 신봉했더라면 가령 고전예술은 시장성 부재를 구실로 진작에 내쳐야 했을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번식력 내지 증식력이 왕성한 문화가 그렇지 못한 문화와 공존할 때 보다 큰 힘이 생긴다. 또 더불어 산업도 살고 경제도 사는 법이다.
밥을 빌지 않고 밥그릇을 빌리면 거지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처녀림을 방불케 하는 카셀의 공원에서 불쑥 일곱 마리 아기 염소나 헨젤과 그레텔과 조우할 듯한 '중세적'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나무 한 그루라도 헐후하게 벨 수 없는 산림정책 덕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조그만 도시,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카셀이 유럽의 명소로 위치를 굳히면서 그림형제가 태어난 하나우, 유년 시절을 지낸 슈타인나우, 대학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난 마르부르크까지 부각되고 있다. 이래도 대전에 문화가 없다는 둥 뿌리가 없다는 둥 징징거릴 것인가.
감히 화가나 문인의 붓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이력서용(用)이 아닌 진지한 연주와 공연으로 물질주의와 정신주의의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생각에서 혁신이 움튼다. 기를 쓰고 용을 써서 반드시 될 일이 아니로되 어쨌든지 우리의 '숨통'과 '밥통'을 동시에 열어주는 지름길이라는 믿음만은 버릴 수 없다. 문화와 예술은 우리 혼이며 밥이기에 내리는 결론이다. 대전문화, 대전예술도 이와 같다.<대전예술 2006년 2월호 '예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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