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독자칼럼]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 승인 2006-02-11 00:00
  • 장익순 前한국전례원 충남지원장장익순 前한국전례원 충남지원장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이맘 때면 어린 시절에 보냈던 익살스러운 추억으로 이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겨우내 날리며 놀던 연줄을 끊어 날려보내거나, 달집태우기를 준비하면서 낮 시간을 보내고,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대보름달맞이를 끝낼 때쯤이면 밤이 이슥해지고 대보름날의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또래들과 동네에서 가장 잘 살고, 인심이 후한 집을 미리 정해 밥과 나물을 훔쳐와 비벼 먹는 일이다. 어머니들은 으레 훔쳐갈 밥은 ‘우정(友情)솥’에 넣어 두고, 맛있게 준비한 나물들은 바가지로 대충 덮어 부뚜막에 놓아 두셨다.

또 이날만큼은 부엌문을 꼭 잠가 놓지 않는다. 그러나 부엌문이 나무로 돼 있어 아무리 소리 내지 않고 열려고 애를 써도 ‘삐그덕’소리를 낸다. 이때 미리 준비한 바가지에 담은 물을 조심스럽게 붓고 나면 소리 없이 문을 열 수 있어 계획했던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우리 어린 시절에 대보름은 재미와 설렘이 있었고, 설날 못지 않은 큰 의미가 있었다. 정월에 있는 세시풍속 중 절반이나 되는 50여건이 대보름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요즘엔 어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젊은 세대들은 우리의 전통풍습인 대보름보다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등 이름도, 뜻도 아리송한 날들을 애써 기억하며 즐겁게 생각하고 의미를 두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국적 불명의 풍속 아닌 풍습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젊은이들의 문화의식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 것에 애착하는 분위기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개운치 않고 씁쓸하기까지 하다. 음력이 천대를 받는 요즈음 같아서는 별다른 대보름을 쇠기가 만만치 않다. 다행히 집안에 고고하신 어르신들이라도 계신다면 귀 밝으라는 귀밝이술과 부스럼 나지 말라는 부럼 깨물기는 있음직하다. 좀 더 유난스러운 집 같으면 오곡밥에 취를 복쌈을 싸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하다못해 호박고지와 무시래기는 삶아 진미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정월 대보름의 분위기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도 퍽 다행스러운 것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졌던 다채로운 행사 중에 우리지역에서도 마을의 안녕과 농경의 풍년을 기원하고,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용왕제, 장승제, 탑제, 당산제, 공주말 디딜방아 등을 비롯하여 지신밟기, 달불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윷놀이, 엿치기, 연날리기 등 세세년년(世世年年) 이어져오는 풍속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풍습들을 담아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우리 젊은 세대들의 시선을 우리 것으로 돌릴 수 있도록 다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해보는 정월대보름였으면 참 좋겠다. 오순도순 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오곡밥, 복을 싸는 복쌈, 액을 쫓는 약밥, 더위 막는 진채식, 귀가 밝아지는 귀밝이술, 부스럼을 없애는 부럼깨물기 등 맛·건강·행운을 담아내는 ‘일석삼조’의 다양한 상품들을 세상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그 고민의 결과 전통의 내음이 풍기게 상품을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며 사람들의 관심을 붙들 수 있다면 밸런타인데이에 불티나게 팔리는 초콜릿을 능가함은 물론 나아가서는 한국의 전통미까지 곁들여져 지방화를 뛰어넘어 세계화, 국제화가 되는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이번 대보름에는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 종류의 곡식을 섞어서 만든 오곡밥과 호박이나 가지, 시래기, 곰취 같은 나물들을 정성스럽게 마주 대하며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보름 밥을 먹어보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