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조연 캐릭터는 아쉬움 남아
우리 영화에도 ‘영웅시대’가
‘흡혈형사 나도열’의 나도열은 ‘퓨전’ 슈퍼 히어로다. 모기에 물려 흡혈귀가 되는 설정은 스파이더 맨이고, 뱀파이어 영웅은 영락없는 블레이드다. 밤과 낮의 이중생활을 해야하는 운명은 딱 배트맨이다. 이시명 감독은 할리우드의 슈퍼 히어로들을 잔뜩 끌어와 엄숙주의는 날려버리고 우리 관객의 입맛에 맞는 양념들로 버무렸다. 코미디, 엽기, 에로틱….
맛깔스런 양념은 역시 코미디다. 얄팍한 상황에 기댄 웃음이 아니라 에피소드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인 까닭에 웃음은 부담없고 깨끗하다. 성적으로 흥분해야 힘이 솟기에, 사거리파 조폭들에게 쫓기는 중간 중간 DMV로 야동(야한 동영상)을 봐가며 파워를 끌어내는 식의 현실적 설정이 웃음을 끌어내는 동력이다.
그 웃음의 중심에 김수로가 있다. 영화는 김수로의 개인기에 상당 부분 기댄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김수로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딱 나도열이다. 다양한 표정과 액션으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 각인시킨다. 슬픔이 살짝 밴 코믹연기는 이 영화를 어느 코미디 영화보다 인간 냄새 물씬한 영화로 뽑아낸 일등공신.
적당히 비리를 저지르며 사는 형사 나도열. 트란실바니아에서 날아온 모기에 물리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송곳니가 돋고 노란 고양이 눈이 되며, 피를 빨고 싶다. 뱀파이어 헌터 비오 신부(오광록)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악당 탁문수(손병호)를 잡기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의 운명을 택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재능을 보였던 이시명 감독은 전작과 전혀 다른 코믹 영화를 자신만의 색깔로 칠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피가 흥건하지만 잔인하지 않고, 성적 코드를 이용하지만 거북스럽지 않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캐릭터를 확실하게 믿고 소신대로 드라마를 붙여나간 덕분이다. ‘배트맨’의 조커를 연상시키는 악당 탁문수와 비오 신부의 캐릭터가 불분명하고 너무 단순한 것은 아쉽다. 이시명 감독이 “속편에서 상세히 다뤄질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속편을 염두에 둔 설정인 모양이다.
다 보여주지도 않고 더 보고 싶으면 속편을 만들게 많이 봐달라는 건 속이 보인다. 시리즈물이 될지를 전적으로 관객에게 맡기겠다는 게 영화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인지, 흥행을 위한 꼼수인지, 판단은 관객에게 달렸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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