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센터 비추며 911 상기시켜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 경고
뮌헨 주 연 : 에릭 바나, 대니얼 크레이그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 ‘뮌헨’(Munich)은 큼직한 자막으로 막을 연다. 실제 사건이란 1972년 뮌헨올림픽을 피로 물들였던 ‘검은 9월단 테러 사건’을 말한다. 인질로 잡혔던 이스라엘 선수와 코치 등 11명이 살해됐고, 도주하다 붙잡힌 테러리스트 3명은 나중에 석방됐다.
오프닝 자막이 걷히기 무섭게 화면에는 당시 사건이 긴박한 호흡으로 재연된다. 실제 TV장면 등을 삽입해 사실감을 높였다. 하지만 163분의 러닝타임을 감안하면 꽤 짧다. 실제 사건보다 사건 이후 얻은 ‘영감’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신의 분노’로 이름 붙인 피의 보복에 나선다. 타깃은 검은 9월단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팔레스타인 출신 인사 11명. 모사드 비밀요원 아브너(에릭 바나)를 리더로 하는 5인조 암살단은 목표물을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영화는 전문 테러리스트들의 솜씨를 날씬하게 보여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 집단의 ‘지리멸렬함’에 초점을 맞춘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겁에 질려 실수를 연발하고, 아브너가 이끄는 암살단은 방아쇠를 당길 사람조차 정하지 못해 제비뽑기를 한다.
영화 전체를 흐르는 이런 리얼리티와 우발성은, 테러리스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란 동질성을 획득하면서, 살해와 테러의 순간이 실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끔찍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심리적 증폭 효과를 가져온다.
목표를 제거할수록 아브너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암살단 멤버들도 그들 또한 다른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극도의 불안감에 빠져든다. 영화는 실로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내면갈등에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이댄다. 화면은 어둡고 걸음은 무겁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이 세운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조목조목 거스른다. 화려한 볼거리와 폭발하는 클라이막스는 조촐한 화면구도와 내면을 파고드는 깊이로 대치됐다. 총격전조차 냉랭하고 배경음악은 거의 없다. 정말 스필버그 영화 맞나 싶기도 한데, 배경만 70년대가 아니라 70년대 스릴러 영화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 그리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가족주의가 그의 작품임을 증명한다.
지루할 법한 후반부에 오히려 영화가 힘을 얻는 건 역시 거장의 솜씨다. 마지막 장면, 아브너는 모사드 간부에게 보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저녁식사를 제안한다. 간부는 “손톱이 자라면 깎아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아브너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다. 냉랭히 돌아서는 둘의 뒤로 세계무역센터가 보인다.
스필버그는 20년 뒤 무너져 내릴 세계무역센터를 통해 ‘폭력에 대한 응징은 더 큰 폭력을 부르고, 정의는 명분을 잃은 채 숱한 생명만 앗아갈 뿐’이라고 웅변으로 들려준다.
공교롭게도 뉴욕 테러와 뮌헨 테러는 9월11일이 겹쳐 있다. 15세 관람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