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이익과 정의를 외쳐 배지를 달면 국민을 무시, 또는 무지한 자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탁받은 것이 아니라, 권한을 쟁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계에는 국민의 소리가 없고 오로지 당과 계파간의 이해다툼만 성행한다. 현실이 없고, 생활이 없음으로써 이들은 상대의 꼬투리를 잡고, 자신들에게만 유용한 명분을 찾아 국민을 현혹시키고 필요에 따라서는 선동도 한다. 이 때문에 국민은 정치를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인들은 일반 국민과 달리 대다수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뜻을 펼치며 살기 전에, 상대의 소신과 뜻에 눌어붙어 이를 할퀴고 흠집 내는 삶을 우선한다. 그러니 정치판에 제대로 된 소신과 뜻이 살아 숨쉴 수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준 속에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보냐, 보수냐 라는 이념 논쟁이다. 진보, 보수가 목적이 아닌, 수단일진대 왜 이를 받들어 모시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이 진보와 보수 속에 정치인들이 챙길 이익이 남은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의 잣대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닌, 국민의 행복과 공익(公益)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술수가 때로는 상술을 능가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생의 정치’이다. 누가 만든 조어인지 결국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조삼모사와 다름없다. 우리 정치가 상생을 논하려면 각 당의 자생력과 생산성을 확보하고 올바른 ‘경쟁의 정치’를 거쳐야 한다. 정체성과 위상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말해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를 돕고 배려한다는 것이, 그리하여 타협하고 공조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것이 상생의 정치가 안 되는 이유다.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세상이다. 국민이 국민을 걱정해 달라며 정치인을 뽑았는데, 되려 국민이 이들까지 걱정해 줘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정치는 모름지기 본래 있던 것을 본래의 자리에 놓는 것이라 했다. 비비꼬고 뒤틀 필요가 없다.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권한을 쟁취한 것인 양, 전리품인 양 생각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국민에게 그 고마움을 표하라. 이치와 도리와 양심과 상식은 이 시대 교양인의 덕목이다. 이 인간적 덕목을 정치인도 갖춰라. 마치 특별한 기준과 잣대가 있는 양 국민을 현혹하지 마라. 보수와 진보가 우리의 핵심가치라고 외치지 마라.
국민의 생활 속에서 정치를 찾아라. 특권층과 재벌로부터 가치가 창출되고, 이 가운데 잉여가치가 국민을 살찌운다고 생각지 말라. 그리하여 특권층과 재벌에 봉사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 양 주장하지 말라. 그러면 또 다시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은 만 명의 국민이 한 명의 정치인을 벌어 먹이는 세상이다. 한 명의 정치인이 만 명의 국민을 벌어 먹이는 세상을 위하여 이제 모든 정치인은 외도를 멈추고 국민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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