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고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어떠한 사물이나 혹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고 느끼지만 왜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고 느끼는지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특히 현시대는 부정할 수 없는 이미지의 시대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이것은 곧 삶의 자신감과도 직결되기도 하며 때때로 삶의 마침표를 찍는 무서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곧바로 돈 과 힘으로 연결되기도 하기에 , 누구나 다 아름다움을 원한다.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몸매에 대한 아름다움의 수단인 다이어트는 지금 거의 이데올로기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다이어트 산업은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으며, ‘다이어트 성공 신화’는 어떠한 화두보다 앞서있는 매스컴의 인기 메뉴다.
이러한 배경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은 않다. 전시대까지 아름다움은 귀족이나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아름다움은 거의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실현된 ‘아름다움’은 권력가들이나 재력가들의 눈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아름다움을 복제하기 위해서 그림이 그려졌지만, 극히 드문 일이었고, 그나마 닫혀진 사회 안에서나 유통되었을 뿐이므로, 일반인들은 아름다움의 이미지 자체를 향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진술이 발달하고, 이어서 이미지 복제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일반인들도 싼 값으로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전 같으면 귀족들이나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정보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신은 왜 아름다움을 원하는가, 당신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다움’의 전범으로서 대중매체들을 통해 무수히 쏟아지는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무의식 깊은 곳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름다움에 대한 주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가 거의 테러리스트처럼 개인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업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까지 참으로 많은 딜레마에 빠진다. 아름다움은 객관적인 면보다 주관적인 면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아주 낯선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깊고 본질적인 층위에서 아름다움을 논한다면, 나는 확실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그 층위에서 나에게 아름다움은 신성함과 동의어이다. 어떤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내 안에 내장되어 있는 완결성에 대한 감각을 만족시켜주는 대상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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