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스턴에서 간단히 “한국은 내일모레 설날이죠? 엄마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한 전화 인사가 우리에겐 전부였다. 서운하기도 하였으나 우리보다 가족이 더 그리울 네 생각에, 유난히 떡국을 좋아하는 너 때문에 엄마는 많이 내색도 못하였다.
원희야, 양력설은 새해라는 말이 이상하게 2% 부족한 것 같다가 음력설날이 지나면 진짜 해 바뀐 기분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음력설이 지나야 우리 엄마들은 새해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은가 보다.
몸의 어딘가는 아직 겨울로 남아 있어도 마음은 벌써 바구니 하나쯤 꿰차고 들판에서 냉이랑 쑥을 캐는 봄처녀 같은 상상을 하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바람이 더 따스해지겠지? 설날, 성묘길에 보니 따스한 날씨 때문인지 들판 곳곳에서 파릇하게 먼저 고개를 내민 봄나물들이 보이더구나. 순간 손바닥이 파릇해지는 걸 느꼈지 뭐니! 내가 나물 뜯는 거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 이제 한국은 아이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 되면 정말 봄이 피부에 와 닿겠지만 누가 뭐래도 엄마의 봄은 설을 지나며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구나. 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리고 늘 곁에서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빠와 네 동생, 이렇게 가족이 함께 보듬어주는 응원 속에 봄은 이미 와 있었나 보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따스한 봄날이 어디 있겠니? 엄마는 2월이 접어들어서야 새해를 맞이하는 늦깎이지만 새봄맞이만은 서둘러 마음에 품어보려 한다. 너무 늦지 않게 모두를 많이 사랑하고 싶어서. 네 마음에도 일찍 따스한 봄이 오길 바란다, 원희야.
※하버드 등 미국 10여개 명문 대학에 합격해 유명해진 박원희양의 어머지이자 시인인 이가희씨가 쓰는 편지형식의 칼럼 ‘보스턴의 딸에게’가 금부부터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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