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의 대립각 통한 욕망. 질투 그려내
게이샤, 기모노를 입은 중국 배
2일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Mem ories of a Geisha)은 한마디로 낯설다. 화면은 아름답고 화사하고, 질감은 부드럽지만 왠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투명한 회색 눈빛. 눈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잉크를 부어 말린 것 같은 눈.’ 동명소설을 쓴 아서 골든은 어린 치요의 눈을 이렇게 묘사했다. 영화는 신비로운 눈빛의 치요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게이샤 사유리로 거듭나는 과정을 쫓는다.
여기에 최고의 게이샤가 되고 싶은 치요(장쯔이)와 하츠모모(궁리)의 경쟁,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누리고도 사랑만은 얻을 수 없었던 가슴아픈 운명도 곁들여진다.
‘시카고’에서 여성의 욕망을 뮤지컬이라는 스펙터클 장르를 통해 그려낸 롭 마셜 감독은 게이샤의 스타일을 스펙터클로 동원한다. “아름답지 않으면 게이샤가 아니다”는 마메하(양쯔충)의 말대로 게이샤의 세계를 아름답게 살려낸다. 독특하고 화려한 화장법, 현란한 기모노들, 다도, 춤, 음악 그리고 부유한 후원자들을 유혹하는 그들의 언어조차 아름답다.
한 벌 만드는데 집 한 채 값이 든다는 기모노는 사유리, 하츠모모, 마메하, 세 여인의 성격과 운명을 상징한다. 물의 운명을 타고난 사유리는 물결 무늬의 기모노를, 질투와 복수의 화신 하츠모모는 강한 컬러의 기모노를 입는다. 마메하는 사유리의 쉼터가 돼주는 나무다.
마셜 감독은 ‘시카고’에서 보여줬던 여성들의 대립각을 세 여인을 통해 그려내려 하지만 에너지가 확 떨어져 버렸다. 게이샤의 몸짓, 의상, 일본식 가옥 구조 등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뺏겨 리듬과 속도감을 잃어버린 탓이다. 영화 자체만 보면 ‘게이샤의 추억’은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하지만 낯설고 거리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이샤에 대한 호기심을 십분 활용하지만, 진실을 들려주진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상상력, 그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잔뜩 치장한 탓에 일본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얼굴 목 어깨까지 하얗게 칠한 뒤 눈 코 입술 라인을 새로 그리는 화장법에서조차 서양 남성들의 게이샤에 대한 판타지가 그대로 읽힌다.
영화는 아름답지만 차갑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소홀한 탓이다. ‘할리우드가 만든 동양화 화첩’ 같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궁리의 빛나는 연기가 아깝게 느껴지는 것도 그 지점에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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