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면서도 힘있는 표현… 여백 잘 살려
화려한 색감·장동건의 카리스마 ‘볼거리’
눈은 황홀하다. 그러나 마음은 답답하다.
역대 중국영화 최고의 제작비
여백을 중시하면서도 간결하고 힘이 넘치는 피터 파우의 촬영, 타미 입의 몽환적이고 강렬한 색조의 의상과 세트디자인은 화려한 이미지를 마음껏 발산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는 이야기꾼 첸 카이거의 이야기가 부족하다.
첸 카이거는 운명과 자유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하늘과 설국 사이, 인간과 신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판타지의 세계를 창조했다.
여기에 주어진 운명을 이용하려는 여인, 운명에 순응하는 장군, 운명을 거스르려는 노예를 등장시켜, “운명도 바꿀 수 있는가”하고 묻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웅장하다. 노예 쿤룬(장동건)은 대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이 이끄는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다. 황제를 구출하려던 대장군은 숲에서 길을 잃고 자객 검은 늑대에게 중상을 입는다.
그는 쿤룬에게 황제를 구할 것을 명령하고, 대장군의 붉은 갑옷을 입은 쿤룬은 성으로 향한다. 그는 정권을 탈취하려는 북공작(사정봉)의 군사들에게 포위된 황제를 구하는 대신 황비 칭청(장백지)을 구해낸다. 칭청과 북공작은 가면을 쓴 쿤룬을 대장군으로 착각하고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극’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허우적댄다. 천상의 미를 얻은 대신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는 칭청, 자신을 은인으로 착각해 사랑에 빠진 칭청에게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대장군, 칭청에게 집착해 삶을 낭비하는 북공작, 그리고 칭청에 대한 사랑을 솔직히 드러낼 수 없는 쿤룬.
“너는 바람처럼 빠
결국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쿤룬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킨 캐릭터다.
장동건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삶에 찌든 노예의 얼굴에서부터 근엄한 장군의 모습까지 매순간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리고 열심히 뛴다. 다만 그 빛이 쉬이 바래 안타깝다.
이 ‘운명의 판타지’는 후반으로 가면서 길을 잃고 만다. 드라마는 깊숙한 갈등을 일으키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연결 고리로만 힘겹게 엮이고, 1000컷이 넘는 컴퓨터그래픽은 아름다운 실사 화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영화에 몰입을 방해할 정도라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패왕별희’ 같은 대작이나 ‘현위의 인생’ 같은 예술영화, ‘투게더’와 같은 소품 등 규모와 장르를 넘나들며 매끄러운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였던 첸 카이거의 과거를 떠올리면 뭉텅뭉텅 잘라진 듯한 ‘무극’의 스토리는 너무 아쉽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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