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 연수 재회 보문산서 데이트
남자 우재-사귄 지 200일째 되는 날, 여자친구에게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다. “왜?”라고 묻지도 못했다. 연수와 현태가 잊으라며 위로해줬지만, 술로도 아픈 마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도망치듯 군대로 떠났다.
여자 연수-우재가 여자친구에게 차였다며 또 술 먹고 울고불고해댄다. 그가 술 먹고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나는 그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우재는 도망치듯 군대로 떠나버렸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추창민 감독, 시네마서비스 제작)는 사랑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보는 이들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 사랑을 그리고 있어서다.
둘의 인연은 10년 뒤 다시 이어진다. 남자는 10년 전, 그녀를 그저 여자‘친구’로 받아들였지만, 갑자기 그녀가 ‘여자’친구로 느껴진다. 여자는 10년 전 그를 짝사랑하다 포기했지만, 10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니 옛 감정이 밀려온다. ‘사랑을 놓치다’는 그렇게 엇나가고 다시 이어지고 다시 엇나가곤 하는 남녀의 내면을 그리는 멜로영화다.
적극적인 애정표현이 미덕인 요즘의 연애풍경에서 ‘남몰래 애태우기’는 어찌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이상한 거리감, 그런 아픈 감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연수의 말을 빌자면 “이거다 싶으면 무조건 잡아. 네 곁에 있을 땐 절대 몰라. 반드시 헤어져 봐야 알지. 사랑이야 그런 거야.” 그런 후회를 안해본 이가 있을까.
영화는 그런 보편적인 사랑의 결을 따라간다. 속마음을 토로하지 못하는 거리감과 세월의 켜만큼 남긴 감정의 골 때문에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연심(戀心)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심심한 사랑이야기에 윤기를 불어넣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설경구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잘 풀어낸다. 하룻밤을 같이 보낼 작심을 하고 면회온 연수를 막차에 태워 보낸 뒤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며 우재가 짓는 쓸쓸함과 아쉬움, 친구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혼재돼 있는 표정은 압권이다.
어느 새 30대 중반임에도 화장 안한 얼굴이 여전히 청순한 빛을 발하는 송윤아의 새침한 연기도 보기에 좋다. 모든 연인들에게 지금 자기 옆에 주어진 소중한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리고 연인에게 부끄럽지만 다시 한번 사랑을 확인하라고 북돋워 주는 것, 이 영화의 미덕이다.
대전 관객들은 영화을 보다가 색다른 즐거움과 만날지 모른다. 우재와 연수가 다시 만나 첫 데이트를 하는 대목, 조심스런 연애의 도입부다. 야구공을 던져 맞히면 인형 등 상품을 주는 투구장은 바로 보문산이다. 지금은 문닫은 놀이공원을 일부만 되살려 찍었다.
‘마파도’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두번째 영화. 우재와 연수의 유머는 추 감독 특유의 웃음코드가 여전함을 방증한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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