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노인이 여윈 어르신을 조심스럽게 모시고 들어오더니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정성껏 씻겨드리고 나서 탕 속에 손을 넣어 뜨거운지 살펴보고는 탕 안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노부자(老父子)를 먼 모습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가슴속에 무언가 뭉클하고 솟아오르는 감정과, 땀인지 눈물인지 눈가에 번지는 물기를 느끼면서 잠시 그냥 있었다.
뽀얗고 통통한 아이를 백자 항아리 보듬듯 부여안고서, 까르르 웃으며 도리질하는 녀석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아빠에게서는 혈육의 정이 새록새록 배어 나오는 듯 하였다.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를 얼싸안고 어르고, 어린 형제는 탕 안에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놀기도 하는데 조금은 소란스러웠지만, 공중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 사는 모습이기에 굳이 탓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잠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네 또래의 젊은이가 밝은 표정으로 “아저씨 등 밀어 드릴까요?” 하기에 나는 이미 몸을 씻었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너라고 생각하며 성의를 다하여 밀어 주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집에는 고사하고 공중목욕탕도 별로 없어서 여름철에는 냇가에서 물놀이로 목욕을 겸했지만 그 밖의 계절에는 더운 물 한 통으로 몸을 씻다가 어머니 손길이 간지러워 몸에 비누질을 한 채로 달아나던 생각이 떠오른다.
제대로 목욕을 하려면 명절 때나 돼서야 목욕탕에 갔었는데, 나무로 만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끼얹으며 옆 사람의 등을 밀어 주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기도 하던데, 요즈음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더라.
모레가 설이라서, 가족들이 모여 겸사겸사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이 많겠지?
하지만 나는 모시고 가서 씻어 드릴 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시지를 않으니 풍수지탄(風樹之歎)의 심정이다.
아들아, 이번 설에 집에 오면 함께 목욕탕에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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