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 오피니언
  • 문화칼럼

미안하다 사랑한다…

  • 승인 2006-01-25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흘러
간 연속극 얘기가 아니다. 개에 관한 책을 두 권 읽게 됐다. 이걸 자랑할 겸 개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첫째는 한국애견협회에서 나온 <개, 개답게 키웁시다>. 개과자, 치아관리용 개껌, 개들의 필수 영양소 분석, 인간의 삼강오륜을 흉내낸 '견공오륜(犬公五倫)'과 심지어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문화애견'까지 곁들여진 책이다. 문화? 좋다!

다른 한 권은 루이제 린저의 <개 형제>(이레)로 개가 화자(話者)인 특이한 책이다. 개 안에 감춰진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듯 우리 안의 개가 개의 말을 이해하는 까닭이란다. 이 무슨 소린지……. 저자의 친구였던 윤이상이나 달라이 라마의 영향일까. 윤회사상이 깔린의인법은 때때로 플러시란 개의 전기를 쓴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죽일 놈의 생각은 자꾸만 꼬리를 문다. 나를 두고 개에게 "삼촌 왔다"고 의인화하던 어머니, 개가 입으로 풀을 뜯으면 비가 내릴 조짐으로 여기던 아저씨, 어쩌다 개꼬리에 지푸라기라도 붙어 있으면 손님이 오며 담이나 지붕에 올라 짖어대면 집주인이 죽는다 하여 불길한 조짐으로 알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런 예시들에는 개와 애환을 함께 나눈 민족 정서가 드러나 있다. 비록 개고기 식습관은 멀리 고려, 신라 이전까지 소급되지만 막판에 잡아먹는다는 차이말고는 우리도 나름의 방식으로 개를 사랑했고 지금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 희생물로 바친다는 '헌(獻)' 자는 개를 솥에 삶는다는 모음글자요, 공자도 개고기를 제사에 썼다.

한데 묘하게도 개고기는 소위 '5대 식품'이면서 법률상 식품이 아니다. 외국인 눈에 그걸 먹는다면 거의 야만인으로 비쳐진다. 뉴욕의 WPIX방송이 "사람이 개를 물어뜯는다"는 고발기사를 보내자 생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당사자가 코요테라고 항변한 문제의 고기는 DNA검사로 코요테와 개의 잡종으로 밝혀졌다고 들린다. 현지에서 '들개'(wild dog)는 코요테의 다른 이름이다.

이밖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많다. 대학로 일식 주점에서 남탕(알탕)과 여탕(조개탕)으로 적은 메뉴판이 화제이듯 미국기자의 똑똑한 우리말 발음 '보신탕'이 미국인들의 조롱거리가 됐던 치욕도 잊을 수 없다. 또 월드컵을 앞두고는 국제축구연맹까지 시비를 건 데 대해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애완견과 식용은 분명히 구분"돼 있다며 쐐기를 박던 일, 서울올림픽 때 보신탕집이 뒷골목으로 쫓겨난 일,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불손한 편지질과 OECD 가입 저지 으름장을 놓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록영화 <몬도가네>의 장면도 자꾸만 어른거린다. 괄티에로 야코베티가 연출했는데 개고기 먹는 습속이 잔인무도한 야만의 행위로서 한 장면을 차지했던 영화였다.

이 모든 사실에 대해 덮어씌우기라도 할 듯, 종합격투기 프라이드 FC 세계 최강자인 얼음주먹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그토록 먹고 싶다던 보신탕을 먹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남의 음식문화에 대해 왈가왈부함은 문화 제국주의일 수도 있다는 것, 무슨 <러브 스토리>의 일절인 양 '사랑하는 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애견 교과서의 지적이 뇌리에 스친다. 보신탕을 별로 즐기지 않는 필자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보는 게 즐겁고 흥미롭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