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 권은 루이제 린저의 <개 형제>(이레)로 개가 화자(話者)인 특이한 책이다. 개 안에 감춰진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듯 우리 안의 개가 개의 말을 이해하는 까닭이란다. 이 무슨 소린지……. 저자의 친구였던 윤이상이나 달라이 라마의 영향일까. 윤회사상이 깔린의인법은 때때로 플러시란 개의 전기를 쓴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죽일 놈의 생각은 자꾸만 꼬리를 문다. 나를 두고 개에게 "삼촌 왔다"고 의인화하던 어머니, 개가 입으로 풀을 뜯으면 비가 내릴 조짐으로 여기던 아저씨, 어쩌다 개꼬리에 지푸라기라도 붙어 있으면 손님이 오며 담이나 지붕에 올라 짖어대면 집주인이 죽는다 하여 불길한 조짐으로 알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런 예시들에는 개와 애환을 함께 나눈 민족 정서가 드러나 있다. 비록 개고기 식습관은 멀리 고려, 신라 이전까지 소급되지만 막판에 잡아먹는다는 차이말고는 우리도 나름의 방식으로 개를 사랑했고 지금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 희생물로 바친다는 '헌(獻)' 자는 개를 솥에 삶는다는 모음글자요, 공자도 개고기를 제사에 썼다.
한데 묘하게도 개고기는 소위 '5대 식품'이면서 법률상 식품이 아니다. 외국인 눈에 그걸 먹는다면 거의 야만인으로 비쳐진다. 뉴욕의 WPIX방송이 "사람이 개를 물어뜯는다"는 고발기사를 보내자 생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당사자가 코요테라고 항변한 문제의 고기는 DNA검사로 코요테와 개의 잡종으로 밝혀졌다고 들린다. 현지에서 '들개'(wild dog)는 코요테의 다른 이름이다.
이밖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많다. 대학로 일식 주점에서 남탕(알탕)과 여탕(조개탕)으로 적은 메뉴판이 화제이듯 미국기자의 똑똑한 우리말 발음 '보신탕'이 미국인들의 조롱거리가 됐던 치욕도 잊을 수 없다. 또 월드컵을 앞두고는 국제축구연맹까지 시비를 건 데 대해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애완견과 식용은 분명히 구분"돼 있다며 쐐기를 박던 일, 서울올림픽 때 보신탕집이 뒷골목으로 쫓겨난 일,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불손한 편지질과 OECD 가입 저지 으름장을 놓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록영화 <몬도가네>의 장면도 자꾸만 어른거린다. 괄티에로 야코베티가 연출했는데 개고기 먹는 습속이 잔인무도한 야만의 행위로서 한 장면을 차지했던 영화였다.
이 모든 사실에 대해 덮어씌우기라도 할 듯, 종합격투기 프라이드 FC 세계 최강자인 얼음주먹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그토록 먹고 싶다던 보신탕을 먹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남의 음식문화에 대해 왈가왈부함은 문화 제국주의일 수도 있다는 것, 무슨 <러브 스토리>의 일절인 양 '사랑하는 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애견 교과서의 지적이 뇌리에 스친다. 보신탕을 별로 즐기지 않는 필자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보는 게 즐겁고 흥미롭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