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지난 주중에 아파트 단지가 몰려있는 지역을 갈 기회가 있어서 이들 지역 한가운데에 있는 사거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선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병원. 종합병원을 방불하게 하는 각종 진료과목의 병원들이 건물마다 가득 차 있다. 병원에 덧보태서 헬스, 요가, 단전호흡, 생식 등 소위 말하는 웰빙에 관련된 간판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다음으로 많이 눈에 띄는 것이 학원이다. 과거와 같은 전과목을 다 다루는 종합학원은 이제 많지 않았고, 오히려 수학, 영어, 과학 등 학과목을 간판에 표시한 단과 학원들이 많이 눈에 띈다. 병원, 학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음식점들이다. 신시가지에서 주거 형태는 거의 전부가 아파트 형태이고 이들 아파트에는 가족중심의 삶이 대부분이다. 이들 가족이 병원에 가거나 학원에 가지 않을 때 유일하게 함께 모이는 공간이 음식점이며 노래방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병원, 학원, 그리고 음식점이 지배하는 이들 신시가지 공간의 문제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고 먹고 할 일 없을 때 하게 되는 것이 문화라는 가장 단순한 개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 학원, 음식점으로 대표되는 신시가지에서의 삶의 모습은 독특한 문화를 보여준다. 웰빙문화, 사교육문화, 외식문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문화 개념의 핵심에 있는 ‘창조성’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개인만이 소유할 수 있으며,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우연성에서 창조성이 나온다고 할 때 대전의 신시가지에서 문화라는 것과 그 문화가 드러나는 공간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호프집 스테이지에서 색소폰과 기타로 연주하는 듀엣, 골목구석 작은 선물가게에서 수공으로 만든 장신구를 파는 아주머니, 대량으로 생산되는 봉지커피가 아니라 혼자 직접 갈아서 만든 커피를 구수한 설명에 덧붙여 파는 커피점, 두세 개 탁자를 놓고 직접 갈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비지찌개를 파는 음식점…. 이런 공간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소들은 사고파는 거래를 전제한 공간들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사고파는 것이 없이 자유롭게 열려진 공간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진정한 공공의 문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롤러 브레이드 묘기를 마음껏 부려볼 수 있는 남문광장 정도가 유일한 문화공간이 아닌가 싶다. 대전이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려면 가장 먼저 자발적 우연성을 마음껏 즐기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되 돈 낼 필요가 없는 공간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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