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석굴암, 첨성대 같은 우리나라의 빛나는 문화유산도 정확한 도량형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정확한 측정기술의 결과다.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현대의 발달된 과학기술로 검증을 해봐도 그 정확성에 감탄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의 정의를 상징한다. 그런데 암행어사의 상징이라면 모두 다 마패를 생각하지만 유척이라는 놋쇠로 만든 자도 있었다. 유척은 도량형을 속이는 탐관오리를 징벌하기 위한 휴대용 기준자로서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휴대용 국가표준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측정표준은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하였으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루는 영역도 넓혀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70년대에 들어와 측정표준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측정표준 대표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도 그런 환경변화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변경하였고 수출주도형 산업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당시 측정표준은 품질관리 및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즉 ‘잘 먹고 행복하게 잘 살자’가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이제 측정표준은 이와 같은 국가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어야한다.
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참으로 많지만 크게 보건, 환경, 안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거나 치료를 위한 검진을 하게 된다. 혈액검사를 통해 각종 질병을 진단할 수 있고 초음파로 인체 내부의 이상을 파악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진단기술은 더욱더 발전할 것이며 다양해질 것이다. 진단에 사용되는 측정이 부정확하여 오진이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레이저, X-선, 초음파 등을 사용하는 진단과정 자체가 인체에 커다란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 또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품 속에 들어있는 농약이나 중금속을 정확하게 분석해내는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식별할 수 있는 측정기술도 필요하게 되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유해물질, 소음, 진동 등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인 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고층건물, 교량, 댐, 지하철 등 대형 구조물이 늘어나면서 대형 참사에 대한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형구조물에 대한 정확한 안전진단 기술이 더욱더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진단기술은 바로 측정표준 없이는 확보될 수 없다. 과거 ‘먹는 문제 해결’이 주 관심사였던 산업화 시대에서 측정표준은 제품의 품질향상과 수출증대에 관심이 있었다. 이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측정표준의 관심 대상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즉 새로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당연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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