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강단을 떠나며 원로 과학자가 한 말이 있다.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일을 컴퓨터가 개발되고 나서 단 몇 초에 해결해 줍니다.” 전 생애를 바친 업적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을 때의 참담함이란. 자연과학 분야의 많은 지식인들은 이런 회의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인문분야의 학문에서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많은 사조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면서 저 도도한 학문의 강은 흘러 온 것이다.
그래도 아날로그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다른 점이 많이 있다.
인류의 문화는 솔직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와 더불어 발전해 왔다. 지난 세기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글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시대의 스토리다. 이제 21세기 정보화혁명의 시대에는 내가 누구인지 하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서 벗어나 하나의 자아를 갖던 개인이, 디지털 매체가 만드는 수십 개의 디지털 자아(아이디)와 사이버 육체(아바타)를 갖는 가상적 주체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글쓰기의 수평적 기회가 확장되었고 창작자와 수용자의 민주적 상호작용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작가가 될 수 있고 종이로 된 운반 수단 없이 e-book(전자책)을 낼 수도 있다.
폭증하는 정보로 인해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문학 정보로 바뀐 것이다. 스토리 형식도 장르적 통합으로 산문과 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문학 정보를 걸러내는 것은 물론 독자의 지적 능력일 것이다. 많은 고전을 경험함으로써 안목을 높이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작가도 독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진리는 바뀌어도 사람의 감성과 가치에 대한 통찰과 삶의 방식은 불변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며 더 진솔한 문학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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