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들이나 고급 식당은 만원을 이루고 신개발지구는 말할 것도 없이 외곽에서도 초고층 아파트 가 숲을 이루고 하늘 끝을 가린 채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대로 경제의 양극화 심화로 가진 층에서의 경제활동에 기인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고공 행진하는 아파트 분양가가 이미 내성(耐性)이 생기고 막연하게 행정중심 복합도시 개발의 최대 수혜지역이라는 자부심이 우리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마음속에 일말의 관용심을 키운 것은 아닌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라 전체가 고분양가고(高分讓價苦)에 시달리는 상황이고 지역적인 특수성과 개발 호재와 맞물린 현상이라고 몇 번을 양보하여 치부한다 하더라도 신규 입주단지 등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높은 분양가도 분명 문제,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개발시대 외양추구(外樣追驅)의 허상만을 좇아 내달려온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미 깊게 자리하고 있는 자원홀대 불감증(?)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재점검해 자원의 중요성을 깨우고 채근하여 의식의 기초를 다시 터잡아 쌓아 올리는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아파트 사용검사(준공)가 나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새 발코니 유리를 제거하고, 새 마루판을 뜯어내고 새 인테리어 자재를 모조리 교체하느라 야단들이다.
그야 물론 경제사정만 허락된다면 새아파트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품격높게 살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그 누가 돌을 던지겠냐마는 문제는 산더미처럼 버려지는 자재 더미가 전부 새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주인이든 작업을 하는 인부든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든 간에 아까워하는 마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사회나 국가에서도 별단의 계도나 홍보, 또는 강제(强制)도 없다.
다만, 버려지는 자재 더미 속에서 생산공장의 최종 검사공정을 통과한 A급 새 자재들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큰 집게차의 굉음 속에서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사정없이 부서지며 구명의 SOS를 요청하고 있으나 여지없이 덤프에 실려 폐기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있을 뿐이다.
60~70년대에 몽당연필 끼워 쓰고 지난 달력이 아까워 신학기 교과서 표지를 싸고, 어느 종이건 여백이 있으면 메모지로 활용하였던 것이 나 혼자만의 해당 사항이었을까?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堪毁傷 孝之始也)라했던가. 자원불문 수지천지 불감훼상 경제시야(資源不問 受之天地 不敢毁傷 經濟始也)또한 이 시대의 구호로서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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