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있어도 돈이 있으면
그의 외침은 분노였고, 분노하게 만든 세상에 내린 정의(定義)였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들떠 있던 1988년 전국을 공포로 떨게 했던 이른바 ‘지강헌 사건’. 영화 ‘홀리데이’(양윤호 감독·현진시네마 제작)는 이 사건을, 영화적 상상력을 보태 비장한 누아르로 빚어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비루한 현실이 이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지강헌을 지강혁(이성재)으로 바꾸고,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는 악랄한 경찰관 김안석(최민수)를 픽션으로 넣어 재구성했다.
올림픽 개최라는 미명 아래 무참히 짓밟히는 판자촌 장면은 분노와 슬픔이 교차한다. 친동생처럼 아끼던 주환이 철거작업에 반대하다 안석의 총에 숨지자, 강혁은 대들다 수감된다. 안석이 교도소 부소장으로 부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강혁은 그의 목숨을 노린다. 안석 역시 공권력을 동원해 강혁을 짓밟는다.
양윤호 감독은 지강혁을 통해 꽁꽁 감춰뒀던 우리 사회의 비열한 표정을 드러내려 한다. 빈민촌과 타워팰리스를 대비시킨 첫 장면부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비열하고 우람한 공권력과 왜소한 서민의 대비는 선명하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적인 행사를 비판하거나, 악법에 대한 호소는 직접적이고, 탈주범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과잉이다. 중반 이후 지루하게 늘어지는 이유는 친절한 설명 탓이다. 감독이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겠지만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었으면 그 울림이 오히려 더 크지 않았을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흘려보내며 남루한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강혁과 인질 소녀의 엔딩신은 눈물을 솟게 하지만, 눈물이 오래 남지 않는다. 직접화법의 부작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건 이성재의 연기다. 비록 범죄자이긴 해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탈주범 강혁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최민수도 비열한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그러나 최민수의 호연이 오히려 영화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독이 됐으니….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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