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논문조작 뉴스를 접했을 때 대다수가 그랬듯이 그리고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혹시 사실이라면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려고 애쓰는 스승을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교수 몰래 다이아몬드가 합성된 것처럼 진짜를 갖다 둔 스토리처럼 마음이 갸륵하거나 아니면 학위취득, 그것도 아니면 동료를 제치고 교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못된 학생의 짓 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과학자는 ‘정직이 생명’이라는 진부한 윤리의식보다는 무엇보다 반드시 재현되어야만 하는 과학의 속성 때문이었다. 또 하나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혹시 잘못이 있다면 학생을 잘 못 둔 탓이겠지 선생으로서 자기 학생에게 조작을 지시한다는 것은 상상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제지간에 어떤 대화와 신뢰가 오갔을까를 상상해보다 불현듯 나의 지도교수님 생각을 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라는 나이에 시작한 박사과정 5년간 지도교수의 가르침은 학문적인 면은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도교수 선택이 과학을 전공하는 우리들에게 배우자 선택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강조했던 학과장님은 학생입장에서 교수들을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셨다. 교수입장에서도 박사과정 학생 선택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마르티 교수도 1시간 내내 전문 직업의 직업윤리를 강조했다.
평소에는 호인이고 소탈하지만 과학 앞에서 항상 지나치게 신중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지도교수의 모습에서 필자는 순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교수님은 야단대신 왜 실수했는지를 스스로 분석하도록 시킴으로써 교훈을 얻도록 가르치셨다. 이 과정에서 정직에 대한 지도교수의 기준은 실험결과뿐 아니라 내 의견을 피력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실험을 하며 기대한 놀라운 결과가 나올 때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올 때에도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설명되고 재현되지 않으면 과학이 아닌 우연이나 실수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부생일때 선배로 부터 ‘이론은 남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나 혼자만 믿는 것’이며 ‘실험은 내가 제시한 데이터를 보고 남들은 다 믿는데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수긍이 갈 정도로 실험에는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내 실험처럼, 수 mg의 운석이나 월석에서 나노그램정도의 대상 기체를 추출해서 9개의 동위원소를 고진공 질량분석기로 동시에 측정한 결과를 갖고 46억년이라는 태양계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이해(일부분이나마)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과학자에게 정직과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마르티교수는 항상 몸소 실천한 분이셨다.
과학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세상은 과학자의 손에 의해 더 좋게 바뀌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평생을 교육과 연구에 몰두한 마르티 교수님.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수십편의 논문을 게재한 명망있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만 전달하는 한결같은 자세로 평생을 학생들을 지도하고 과학발전에 기여하신 교수님이 새삼 존경스럽고 더욱 더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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