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있어서 관객이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연극의 경우는 관객을 3요소 중의 하나로 손꼽고 있다. 어디 연극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소위 공연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모든 예술은 다 관객이 절대적인 요소 중의 하나다. 공연 예술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관객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기에 앞서 관객이 너무 부족하다. 수준 높은 공연만 하면 관객은 물밀 듯이 몰려 올 것이라고 상투적인 발언만을 일삼는 사람들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지역에서 나름대로 역량 있고 수준 높은 공연을 하는 극단이 몇 몇 있다. 하지만 관객은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공연 예술 하면 우선 먼저 뉴욕과 런던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극장가에 몰려 있는 열 서너 개의 대극장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모두가 뮤지컬 일색인 것이 유감이지만 어떻든 관객은 엄청나게 많다. 이 극장들이 모두가 소극장이 아니고 대극장이라는데 더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뉴욕과 런던의 여행을 통하여 그것을 목격하고 또 체험했다. 예매하지 않고는 볼 수도 없고 가격도 50달러이상으로 상당히 비싸다.
그렇다면 뉴욕이나 런던처럼 세월이 지나면 관객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것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제는 범사회적인 관객 개발에 본격적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몇십억원 이상이나 드는 향락 업소가 즐비한 나라에 무슨 장래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대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극장 정책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전시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을 줌으로써 구 도심의 건물주나 사업자들에게 소극장이나 중극장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극단들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 장기공연을 통해 작품의 품질을 높이고 관객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서울의 대학로나 뉴욕, 런던처럼 우리지역에도 관객이 넘쳐날 것이다.
경제적인 성장이 향락이나 과소비로 연결이 된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너무나 한심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그 입구에까지 왔지만 어떤 충격요법을 쓰든지 문화예술쪽으로 그들을 유도할 경우 우리는 보다 밝은 장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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