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만 있고 폼나는 액션은 없다?”
주 연 : 권상우, 유지
거칠다. 처절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저리다. 영화 ‘야수’(김성수 감독·팝콘필름 제작)는 제목 그대로 야수(野獸)를 그린다.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 수컷들의 냄새가 진동한다. 화면 가득 권상우의 피투성이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막을 연다. 시작이 아니라 결말이다. 그리곤 보여준 끝을 향해 질주한다. 불 같은 형사와 얼음 같은 검사, 두 사나이가 사회악과 싸우면서 야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강렬한 액션과 감각적 영상으로 하드보일드하게 담아낸다.
영화에는 ‘주인공들의 야성’만이 존재한다. 주인공은 셋.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열혈형사 장도영(권상우). 폭력조직에 이용당한 뒤 버려진 동생의 주검 앞에서 포효한다. 법과 정의를 믿는 냉철한 검사 오진우(유지태). 애써 잡아넣은 용의자들이 ‘윗선’을 통해 빠져나가는 걸 보면 피가 끓는다. 그리고 정계진출을 노리는 폭력조직 두목 유강진(손병호). 한 발만 삐끗해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위기감에 비열한 야수가 된다.
서로를 길들이려는 셋의 팽팽한 균형은 유강진의 음모로 도영과 진우가 감옥에 가면서 깨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영과 진우는 본능만 살아있는 새끼에 불과했다. 철창에 갇히자, 야생의 늑대가 날뛰듯, 묻어두었던 야수의 본성이 비로소 이빨을 드러낸다.
신인 김성수 감독(‘비트’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감독과 동명이인이다)은 장르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빌려와 비틀어버림으로써 진화된 자기 복제를 일궈낸다. 열혈형사와 냉혈검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합은 버디무비의 익숙한 전형이다. 공공의 적의 등장도 당연한 수순. 그러나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배신하면서 전형성을 깨뜨린다. 세 남자의 길들이기 기(氣)싸움은 모든 것을 잃는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매듭짓는다.
‘폼잡기’를 거부하는 것도 그렇다. 한 마리 개처럼 얻어터지고 깨지는 싸움만 있을 뿐 폼나는 액션은 없다. “액션이라기보다 폭력에 관한 영화, 원칙이 사라진 뒤 폭력으로밖에 해결할 길이 없는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날 것 그대로의 폭력을 몸으로 보여주는 권상우의 연기는 그래서 돋보인다. 헝클어진 머리, 그을린 얼굴빛, 창백한 입술로 거친 욕을 내뱉는 캐릭터는 제법 잘 어울린다. 그의 ‘무대뽀’ 캐릭터가 영화 ‘야수’를 야수답게 한다. 유지태도 세밀한 표정 연기로 냉혈에서 열혈로 변하는 오진우 역을 깔끔하게 소화해 냈다. 마지막 파국을 책임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누아르 주인공 그대로다.
실제 조폭 출신의 한 인물을 스크린에 옮겼다는 유강진 역의 손병호는 이 영화의 소득.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연기력으로 평범함 속에 사악함을 감춘 이중성을 잘 표현해 냈다. 주인공만큼 비중이 주어졌다면 더 매력적인 악당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거칠게 질주하던 영화는 허망하게 정지해 버린다. 권상우는 “허무함이 더 깊은 감동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지만, 글쎄다다. 그저 허무함만 남을지, 감동이 될지, 그건 관객의 몫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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