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배 정치부장(서울주재) |
그렇게 경원 시 해왔던 군부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국회부의장이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되어 조소(嘲笑)를 산적이 있다. 3권 분립 국가에서 입법부를 통법부로 취급해도 누구하나 입 뻥끗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집권당이 나아진 게 있다면 이번 개각을 문제삼은 34명의 서명파 초?재??의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집권당 내부의 개각소동은 이미 국민적 인식으로 굳어진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퍼스널리티에 관한 것과 주변 참모진의 문제로 모아진다. 대통령의 뚜렷한 개성문제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갈 수 있도록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좇아야 하는 것이 참모진의 역할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의 생각은 21세기를 달리고 있으나, 국민의 의식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근대적 사고에 갇혀있다”는 청와대 공보수석의 발언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에게는 ‘용비어천가’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에게는 이처럼 혹독한 망발과 무례는 없다.
나아가 서명파 의원들이 ‘의사소통구조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며 급기야 당?청갈등??드러내기까지 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당의장 역시, 문제의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입각에 따른 덕담과 답례요, 조크라고는 하지만 “핸드폰을 베개 밑에 두고 (청와대로부터) 연락 올 때를 기다리느라 잠 한숨 못 잤다”는 말에 낮 부끄러움은 극치에 이른다.
국정책임이 있는 위치의 사람들일수록 그들이 갖는 의식구조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을 기는데도 개인의 출세욕에는 체면도 불구하고 몰염치하기만 하다.
흔히, 한 정권의 체제유지에 핵심요직 3자리를 꼽는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위엄의 총리직과 대통령비서실장, 그리고 국내???사정을 꿰뚫어 볼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장 등 이름하여 ‘빅3’로 불린다. 참여정부 출범당시에도 새 정권의 ‘빅3’자리에 누가 오를까 초미의 관심이었다.
대통령중심제라는 군주제 못지 않은 절대권력 때문일까. 그중 대통령비서실장직은 옛 도승지자리와 곧잘 비교된다. 막중한 특수임무에 비추어 볼 때, 왕이나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고 선호하는 사람을 앉히게 마련이다.
바로 그 자리에 국내 유수 사학의 현직 대학총장이 발탁됐다해서 세간에 말들이 많았다. 학생처장이란 보직교수로서 훈육을 맡았던 운동권제자들이 뭉쳐 만든 정권의 성공 덕을 뒤늦게 본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 대학 동문회나 오랜 전통 사학으로 우정과 경쟁을 함께 다져온 상대 학맥측 내부에서는 거꾸로 자존심과 자부심을 구긴 대표적 사례라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국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학맥이 각기 자신들의 대학총장은 내각수반과 맞먹는 위치라고 감히 자부하고 있다. 이들 학맥에서 배출한 인물들의 내각 점유율도 그러하지만, 적어도 이들을 통솔하려면 내각수반 정도는 돼야 의사타진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이 절대 오만함으로 비춰지질 않는다.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우리의 오랜 유교적 풍조나 유교적 지배이데올로기 때문일까. 그래도 모든 사물에 격(格)은 있다. 요즘 감투 앞에서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나 자부심을 주체 하지 못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는 듯해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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