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의 구성원중 전체아동의 25%가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으로, 또는 부모의 폭력이나 학대로 인해 거주 할 곳이 없어 시설에 맡겨 진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고 깨끗한 것 같으면서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 그 속에는 사랑이 그리운 아이, 관심이 필요한 아이, 보살핌이 적어 그저 야생마처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다.
그 중 한 여자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시설에 맡겨 진 아이였다. 상처가 많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폭언,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가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이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6학년이 되면서 행동은 점점 거칠어지고 사건은 자주 일어났다. 교사나 어른들에게도 거친 말투와 불량스러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일로 화도 나고 힘들었지만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어른들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른을 대표해서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넌 소중하단다. 그래서 함부로 살면 안돼. 너를 사랑한단다.” 상담하면서 흘린 둘의 눈물이 그 아이의 마음을 녹일 수 있었나 보다.
그 후 꾸중에 앞서 이해하고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온순해 지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편안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이런 변화가 있기 전 4학년 아이를 때린 것을 용서 받지 못해 맞은 아이 부모가 강력하게 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보호자 입장인 시설에서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얼마 전 아이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받았다.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지낸다고.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의 답장은 ‘다른 친구들은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하는 답변이었다. 관심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아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 힘들었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아직 세상을 모르고 순수함이 남아있는 아이들이기에 살 수 있지 않았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에게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작은 미소를 달아줘야 겠다. 눈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지나간 쌀쌀한 기온은 12월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작고 작은 볼품없는 겨자씨의 교훈을 심어주고 싶다.
받기 보다는 1000원짜리 붕어빵이라도 나눠 먹을 때 따스함을 같이 느낄 수 있고 행복하며 그런 행복을 느끼고 배워 전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꿈꾸며 말이다. 기다려주자. 그리고 사랑으로 맞이하자. 그 아이들이 세상에 사랑을 전할 때 세상은 살맛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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