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아주 좋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일상적인 평범한 말부터 시작해서 업무상 필요한 말, 감상적인 말, 슬픈 말, 기쁨에 넘치는 말, 화로 인하여 나오는 격한 말, 시끄러운 말, 은밀한 말, 고성방가 등등 갖가지 말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보낸다.
이 같은 말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바로 인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상대방은 이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체계인 것이다. 사실 그렇다면 말이란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말이란 말하는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말, 즐거운 말, 힘을 북돋게 해 주는 말,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말·이러한 말들을 말이 존재하는 이유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말이란 예전부터 이처럼 좋은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악의적이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말이 좋은 말, 올바른 판단에서 나온 말을 압도하여 결국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되었던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순신의 나라를 위한 순수한 충정이 신하들의 어리석은 말에 왜곡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보면서 말의 왜곡이 얼마나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인지에 대하여 느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사실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악의적인 말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언론이 발달하면서 말은 신문, 방송 뿐 아니라 휴대폰, 인터넷까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말은 남을 비방하고 욕하며 비하하는데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의사전달이 가능한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러서 익명에 의한 인신공격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의 남용에 대하여 적절하게 규제할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터넷상의 실명제를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해결방법은 이러한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 각자에게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뿐일 것이다.
인간의 말을 혀로 비유한 탈무드의 교훈은 말이란 사용하기에 따라 사람에게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경우에 인간의 말이 나쁘게 오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탈무드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남을 험담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더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 밖에 죽이지 않지만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즉 험담을 하는 사람, 자신과 그 험담을 만류하지 않고서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험담의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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