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대학을 진학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과계열을 택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이르러 자연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문과, 이과를 불문하고 공부 좀 한다는 사람은 누구나 사법시험에 수년에서 수십 년을 매달리고 자연과학계라해도 의약계나 한의학계로만 몰리는 국가적 난제가 발생하였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겠지만, 장차관을 포함한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대기업의 간부, 심지어는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마저도 대부분이 문과계열의 전공자들이다. 다 알고 있다시피 건국 이후 대통령이나 총리 누구도 자연 과학을 전공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
단편적인 예지만 이 같은 사회 구조에서 누가 과학을 하고 싶겠는가? 우리나라 역사상 어떤 과학자도 황우석 교수처럼 국가적 지원과 국민적 후원을 받아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필자와 가깝게 지내던 두 사람의 예를 들어 보자. 두 분 다 농촌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대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판검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고 적성에 맞는 이과계를 선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여기는 대학에서 각각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8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과정을 끝내고 한 사람은 대기업 연구소에서 5년, 또 한 사람은 대학에서 10년 동안 연구 활동을 하다가 이 지역의 연구소와 지방 사립대학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연구 활동을 계속했으나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없는 환경, 진급도 안 되는 연구원, 애들 과외비도 안 되는 보수, 판검사 친구들과 비교도 안 되는 사회적 위치 등을 이유로 연구는커녕 폐인이 될지 모른다며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논란 과정에서 등장하는 연구원이란 직(職)을 처음 들었을 것이다. 이들 또한 과학도로서 생각할 수없을 정도의 낮은 보수를 받고 일하며 대개는 논문에 이름조차 올릴 수 없다. 황우석 팀에서 연구하는 연구원들처럼 정부투자 연구소나 대기업 또는 대형 병원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평생 조그마한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진급이라는 말도 모르고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연구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과학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황우석 팀의 논문 발표와 이에 따른 국가적 지원 및 국민적 관심은 과학도들에게는 커다란 부러움이자 희망이었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 ‘황우석 신드롬’ 이 대단하였을 때 우리 모두가 열광하였던 이유는 노벨상을 거론할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 상품이 되리라는 자부심에 찬 기대와 향후 수십 년간 국가적 성장 동력과 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질환에 큰 도움이되리라는 기대와 기초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사고의 변화 즉, 과학을 하면 부와 명예 그리고 성취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기류가 형성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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