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집과 길이 있어야 하고 그 길에는 터널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할 때 결사 반대하던 많은 나리들도 지금 이 순간 그 고속도로 위를 편안하고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허리를 자르고 터널을 만들면 환경파괴가 된다는 것이 이네들이 반대하던 거룩한(?) 뜻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늘어난 물동량으로 이 고속도로의 노폭이 해마다 자꾸만 늘어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전국 어느 곳이나 거의 같겠지만 하나의 예를 들자. 영동선 신갈 쪽에서 원주 쪽으로 오다보면 들머리부터 좌우 산들이 깎이고 뭉개어져 길이 나고 터널이 뚫리고 그 자리에 고층의 아파트군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다. 이것들 모두 환경파괴로 얻어진 것들이다. 알면서도 절대수가 부족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조금이나마 혜택을 주려는 정부의 고육책이다.
천성산 도롱뇽처럼 계룡산에서 이에 대신할 상징적 동물을 찾겠다고 나선 스님들은 여기 현장에 와서도 단식을 하면서 환경 파괴의 주범인 주택건설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묻고 싶다. 뿐더러 100분의 1쯤 남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 역시 15년 간에 걸쳐 끈질기게 반대의 벽에 부딪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전장 33㎞ 중 2.7㎞의 끝 물막이공사를 남겨 놓은 상태이지만….
아는 것처럼 여러 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 몇 년씩 공사 중지, 재조사, 평가, 승소로 공사재개를 되풀이하고 있어 주변의 주민과의 갈등, 풀리지 않는 긴장, 시간과 돈의 낭비라는 3 중주곡을 되풀이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 못 할 기막힌 슬픈 우리의 현주소다.
지난 9월 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국내유일 비공개 사찰 봉암사 선원장 정광스님, 지금 이 순간 최선 다하면 귀한 삶’ ‘하루 14시간 나를 잊는 수행 올곧은 정진 도량 지키려’ ‘앞으론 부처님 오신 날에도 개방하지 않을 겁니다’. 세속의 진애 속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한 스님에 대한 기사였다.
이 기사로 두 길을 가고 있는 스님을 보았다. 정광 스님처럼 산속에서 은거하며 정진수행하는 스님과 삼보일배나 단식으로 제도중생하려는 스님을 말이다. 심산유곡의 산문에서 석존의 가르침을 받들며 참선 정진하는 정광 스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하문드리고 싶다.
“새만금의 삼보일배를 하는 사이 국책사업들은 차분히 준공이라는 종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고 경부고속도로가 우리 생활에 ‘허브’ 역할을 하고 있음을 세속승들은 알까요?” 하고 묻고 싶다. 부디 이 단상(短想)이 독자들보다 세속승들에게는 장상(長想)으로 남기를 거듭 빌어 본다. 망언다사(妄言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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