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을 먹으면서 새해 새아침을 열기로 했다. 뽀얗게 고아 놓았던 곰국이 제대로의 맛을 냈다. 떡국 먹고 나이 한살 더 먹는 것이 마냥 좋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붙들어 매놓고 싶은 심정이니 중년의 허전함이 이런가 보다. 그동안 신세를 졌던 사람들, 삶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던 많은 분들에게 안부인사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친구, 선생님, 알고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몇 자 적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답신이 오기도 하고, 전화로 안부를 전해오는 반가운 목소리도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때론 왈칵 눈물이 솟고, 진한 여운이 가슴에 남아 밤이 늦도록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현재로 넘나들면서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며 바로 전화를 주셨다. 작년 봄 삼십여년이 지나 알게 된 선생님의 연락처로 전화를 드리며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던지. 설렘으로 만나 뵌 선생님은 별로 변하지 않으셨고, 어렸던 나만 선생님 옆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늙어버렸다.
바쁘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안부도 자주 못 여쭙고 항상 죄인의 심정으로 지냈다. 자상한 선생님의 격려와 보살핌을 항상 마음 속 깊이 간직해 온 것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만 살아가고 있다.
올 해는 사람 노릇 하며 살아야겠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바람으로 이런 일 저런 일하며 바쁘게 지내지만, 주변의 작은 일이나 지금까지 나의 삶에 관련되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소홀함은 없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시간이 없다며 미루어 놓았던 많은 일 들, 다음 기회에 보자며 제쳐 놓았던 내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것들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선다.
선생님께도 만나 뵙자고 전화도 드리고, 그 옛날 선생님이 내게 맛난 음식을 먹여주셨던 것처럼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련다. 잊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의 저편에서 되돌려 연락도 하고 안부도 묻고 사람사는 정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잘 될까? 일에 치이고 손길 기다리는 많은 일들 앞에서 허덕이다 우선순위에 밀려나지는 않을까?
떡국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남편과 바람쐬러 밖으로 나갔다가 조용한 술집에서 연인처럼 칵테일 한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탈 없이 행복하게 살아왔고, 이웃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 것이고, 사람냄새 나는 삶을 꾸려가자고.
새해에는 일 보다는 사람을 생각하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면서 사람사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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