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 37.설과 동서양의 요리

[안영진의 충청비사] 37.설과 동서양의 요리

서민애환·향수 버무린 ‘충청의 맛’ 그리워

  • 승인 2006-01-05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예부터 음식문화 향유 불구 세월따라 퇴영
한밭식당 등 충청권 대표음식. 식당 사라져
서산 게꾹지 등 서민 향토음식 맥 이어야




2006년(丙戌) 새해를 항
진한다. 지구촌에서 유독 구정을 고집해 온 건 한국과 중국으로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한 일본에선 신정(양력)을 쇤다. 구미 각국은 신정보다 크리스마스에 더 무게를 얹고 신정하면 하루 이틀 쉬는 연휴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선 정초 일주일간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

한국의 경우 3~4일간을 쉬지만 중국은 곳에 따라 보통 보름을 내리쉬는 풍습을 지녔다. 구정, 신정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앉으면 으레 각국의 음식 이야기로 화두를 장식한다. 일반음식은 그 연원이 자연발생의 소이라지만 ‘요리’는 발상자체가 좀 색다르다.

속설(통념)에 따르면 요리란 군주와 전제(專制) 폭군이 군림해 온 곳에서 발전해왔다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지배자의 환심(아첨)을 사기 위해 연구 노력한 결과 요리로 발전했다는 논리다. 옛날 군주가 무료하면 그를 위해 이야기꾼(storyteller)이 우화를 지어내는 행위, 그것이 훗날 소설가(Novelist)로 탈바꿈했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세계적 요리하면 프랑스, 중국, 이태리 것을 들기 마련인데 그 까닭은 이렇다. 중국은 시대마다 폭군(진시황)이 군림해 왔고 이태리 역시 로마의 ‘네로(Nero)’등이 존재했으며 프랑스는 ‘루이(louis)’ 등의 폭군이 있었다는데 근거를 둔다. 요리 이야기에 이르면 식도락가와 기업인, 해외주재원, 여행가들은 신나게 떠들어댄다. 그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 요리: 달팽이 껍데기 속에 데친 달팽이 살을 넣고 마늘과 파슬리로 향을 낸 후 버터를 넣어 오븐에 구운 에스카르고를 들먹인다. ▲ 터키의 ‘케밥’도 이름 있는 요리다. ‘케밥’이란 고기구이를 뜻하는 것으로 야채와 작게 자른 고기를 꼬치에 끼어 구운 것을 말한다. ▲ 중국음식은 상어지느러미와 해삼, 상어입술, 전복, 비둘기 알, 죽순 등으로 만든 것. 이를 ‘불도장’이라 부른다. 중국요리는 너무나 다양해서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지만 북경엔 서태후가 즐겼다는 저 유명한 요리가 전해온다. 또, 북경요리(京菜)는 강한 화력으로 튀긴 볶음종류가 나온다.

▲이태리 : 해물국물에 마늘과 양파를 썰어 넣고 끓인 쌀 요리, ‘파에야’ 를 비롯 녹두를 넣어 만드는 것도 있다. 그 뿐만 아니다. 발톱까지 들어내는 족발 요리가 일품이다. ▲일본 : 섬나라 일본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사시미(회) 요리를 꼽지만 요즘엔 그것이 유럽, 미주에까지 상륙인기를 누린다. 사시미는 생선이 원료지만 말고기(馬刺)요리도 한 몫을 한다. 그러면 동서양의 설(명절)문화는 어떠하며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중·일 한자문화권에선 고향과 부모형제를 찾는 소위 귀성전쟁이 일어난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즐기며 유대감을 다지는데 반해 서구는 파티 중심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궁중(宮中)요리’

한민족의 요리, 음식문화는 프랑스·중국·이태리 것에 뒤지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으론 첫째 ‘궁중요리’와 요즘 날개를 단 ‘불고기’, ‘죽요리’ 등 다양하다. 수수백년을 이어온 궁중요리는 고려 말부터 조선조 500년을 주름잡았던 한민족 고유의 것으로 자랑할 만하다. 그런 이유로 궁중요리는 진연의 궤(進宴儀軌), ‘궁중의 음식발기’, ‘왕조실록’ 등의 문헌에 그 실체가 상세히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책자들은 임진란 때 왜구가 약탈해갔고 강화도전쟁, 프랑스함대가 저지른 ‘병인양요’ 때 탈취당해 그 소중한 ‘음식문화’의 문서가 없어진 채 오늘에 이른다. 궁중요리란 ‘찬물류’ 말하자면 ‘탕’의 종류와 ‘찜’ 그리고 ‘전’과 ‘적’, ‘편육’, ‘회’, ‘포’, 이외에도 갖가지 ‘떡’, ‘과정류’를 갖고 차리는 음식상을 말한다. 궁중요리는 한마디로 예술의 극치였다.

조선조 궁정의학사 연구가 이원섭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요리를 만드는 데엔 뛰어난 솜씨를 지닌 ‘주방상궁’과 대령숙수(待令熟手)였을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 중국, 이태리요리의 발달과정과 엇비슷한 면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궁중의 잔치상에 올랐던 음식물을 민간에게 하사품으로 전하기도 했고 고관대작(사대부)집 음식이 역으로 궁중에 진상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니 음식물이 아래위로 교류했다는 이야기일수 있다. 그 바람에 궁중음식문화가 일반서민에게 전파됐다는 건 주목할 대목이다. 궁중연희규모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영조 20년에 열린(광명전) 잔치 상은 350상(床)이었고 왕의 즉위 30주년, 대왕비 육순잔치 때는 국가적 행사로 1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는 기록과 만난다.

이를 위해 요즘 직제로 치면 의전집행위원장을 두고 그 밑에 제조상궁과 내시부상선 등이 총동원되었으며 각 시도(감영)의 전속음식담당자까지 징발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렇듯 우리는 자랑스러운 음식문화와 전통을 간직하며 또 그것을 향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의 문서를 약탈해간 프랑스 왕조가 놀랐으리라는 건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충청권의 향토음식은?

오래전 이야기다. 서울신문 편집국장 L씨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은 일이 있다. ‘나의 단골집’이라는 고정란이 있으니 대전지방의 향토음식을 자랑하라는 뜻이었다. 원고청탁을 받고 며칠간을 망설인 데엔 음식에 대해 문외한인데다 내세울만한 음식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한 데 있다.

함경도하면 함흥냉면, 평안도는 동치미냉면, 황해도의 보쌈김치, 강원도는 메밀국수, 경기지방엔 수원의 암소갈비, 충북은 대청호 쏘가리탕, 경상도는 추어탕, 부산의 회덮밥, 전북은 비빔밥, 전남하면 죽순요리(대통밥)와 홍어 찜, 제주도는 갈치요리 등이 있다. 이는 필자 나름의 귀동냥일 뿐 정확한 조사결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장 대전·충남권엔 무엇이 있는가.

가오리의 순두부, 신탄진의 장어구이, 계룡산의 도토리묵, 금산의 어죽, 서산의 어리굴젓,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니 딱히 “이것이다”라고 내세울 만한 음식이 떠오르질 않았다. 원고마감 날짜가 코밑에 다가와 면피용으로 ‘나의 단골집’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전 교외에 구봉산(九峰山)이라는 기암괴석으로 된 산이 있다. 그 산 밑에 있는 K라는 식당 이야기다. 아홉 봉우리가 병풍처럼 아름답다 해서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식당은 원래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가수 ‘권혜경’이 신병 요양 차 머물렀던 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쟁끼(꿩)가 푸드득거리고 철조망 안엔 노루와 꽃사슴을 사육하고 있었다. 요정처럼 비싸지도 않거니와 인텔리부부가 친절해서 자주 찾은 식당이다. 그래서 외국손님이 오면 가끔 그곳으로 갔다. 프랑스 문화성 안토니오즈(문화예술국장)부부가 대전에 왔을 때도 이곳으로 안내를 하자 그들 부부는 쑥국수, 사슴고기, 계피술을 들며 마냥 즐거워했다.

K식당을 소재로 원고를 써 보냈는데 얼마 후 그 식당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가보니 진주, 군산, 원주 등지에서 전화 문의가 왔다며 신문의 위력에 놀랐다며 반겼다. 그 식당은 이제 맞은편으로 옮겼다고 전해온다. 그럼, 대전이나 충청권엔 내세울만한 향토음식이 없는가. 옛날보다 퇴색해 있다는 인상이다. 외국엘 나가보면 100년 이상, 7~8대를 끈질기게 이어오는 레스토랑, 또는 향토음식점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는 어느 한 업종에서 돈을 벌면 곧장 상호와 업종을 바꾸고 변신하는 습성들이 있어왔다. 대전에도 한밭식당이라는 설렁탕을 주로 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60~ 70년대 전성기엔 돈을 갈퀴로 긁는다고 주변에선 부러워했다. 그 식당의 설렁탕과 수육, 깍두기는 그야말로 일미였다. 그 바람에 서울에다 분점을 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서울에서 부산, 광주로 내려가는 손님 중에는 그 식당음식에 반해 대전역에서 도중하차해 그 식당을 거치고 나서야 하행 길에 오르기 일쑤였다. 그리고 깍두기 맛이 일미라 해서 지사, 시장, 군 장성 관저엔 이 식당의 깍두기가 조달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식당에서 떼돈을 번 주인공은 이 고장을 떴다.

풍문에 의하면 서울에 가서 거창한 ‘나사점’을 경영한다고 했다. 요즘과 달라 그 시대는 식당이 아무리 커도 유지(有志) 축에 못 끼는 걸로 인식되던 시대 일이다. 예를 들면 푸줏간이 잘나가 돈을 벌면 직종을 바꾸며 족보를 뜯어 고치고 변신을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았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져 있다. 큰 백화점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와 생선을 파는 건 따지고 보면 큰 재벌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가치관도 사뭇 달라져 있다. 빨리 돈을 벌어 신분상승을 노리다 보니 음식문화마저 퇴영해온 게 아닌가 싶다. 향토음식이 제자리를 못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뎅집 12대, 다다미짜기 8대, 게다(신발)파기 6대, 이것을 자랑으로 삼는 일본의 산업구조는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瑞山의 ‘게꾹지’ 밥집

서산시청 앞 골목엔 서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밥집이 있다. 승용차를 댈만한 뜨락도 없거니와 건물자체도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식당. 밥집의 식단을 보면 백반에 우렁 된장, 서해에서 나오는 김, 콩나물, 김치가 전부지만 이 밥집이 유명한 건 ‘게꾹지’ 때문이다. 주변 여관이나 장급호텔에서 묵은 손님들도 그래서 자주 이 식당을 찾는다. 그럼 ‘게꾹지’란 무엇인가. 어쩌면 충청도에서나 통하는 사투리일지도 모른다.

버리는 배추, 무의 누런 이파리와 헤드레, 새끼 무로 담그는게 게꾹지다. 가을김장처럼 속이 찬 배추와 쭉 빠진 무에 온갖 양념과 젓갈로 담그는 게 아니라 표현대로 ‘게꾹’으로 버무리는 김치, 굴과 생선, 온갖 양념에 고춧가루를 벌겋게 넣고 속 알이 찬 무, 배추로 담근 김장은 어른들 식탁에, 또는 사랑채 손님상에 오르지만 이 ‘게꾹지’는 아녀자(부엌데기)들의 몫이었다. ‘게꾹’은 ‘간꾹’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금물에 새우젓, 밴뎅이 삭힌 액젓으로 버무려 발효시킨 후에 먹는다.

‘게꾹지’는 그래서 색깔부터 검푸르며 그것을 한겨울 삭히면 짭짤하면서도 알큰한 맛과 새콤한 향내음이 식욕을 돋우는 서민 반찬이다. 그러니 일반 농가와 서민들과는 떨어질 수 없는 먹거리였다. 어떻든 이 식당은 연중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젊은 세대는 ‘게꾹지’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데다 발효가 도를 넘으면 콜콜 군둥내 나는 이 김치 앞에 아연실색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김치는 서민의 것으로 우리 음식문화의 한 축을 이뤄왔다.

특히 노장층에선 그 콜콜한 냄새와 칼칼한 뒷맛에서 향수를 느낀다고 했다. 쓰레기로 나갈 배추, 무 잎사귀를 원료로 담근 ‘게꾹지’. 이것은 어떻든 서민의 것이요, 향토음식이라는데 애착을 느낀다. 기회가 있으면 그 밥집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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