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과 사람은 지구상에 출현시기가 달라 공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영화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에서 벌어진 일이 이제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자연사를 포함한 과학관련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가장 큰 관심이 거대한 공룡에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이 세상은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이끌고 있을 뿐만아니라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이해에 모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관련 박물관에는 인류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다른 나라의 과학관련 박물관은 대부분 그 첫머리에 인류의 탄생과 진화, 현생인류의 구조와 인류의 앞날에 대한 것들로 꾸며져 있다. 우리는 제대로된 인류박물관이나 과학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인류전시관 마저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공룡과 곤충이 인간을 삼키고 갉아 먹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문화를 드러내는 방법 가운데 거대하고(gigantic) 환상적(fantastic)인 볼거리(spectacle)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런 것일까?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가 과학이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본질이라고 한다면, 자연을 활용하고 훼손하는가 하면 보호·보존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자연에 미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조감할 수 있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류에 대한 이해가 올바로 이루어지려면 자연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사에 대한 이해는 현생자연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다. 즉 현생자연의 생물다양성에만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연사에 진화(역사)는 없고, 분류와 분포만 남는 이상한 꼴이 되고 말았다.
자연사의 폭과 깊이는 자연의 변화와 인류의 행위를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관점에서 논의하여야 한다. 즉 학문 분야로서 말하면 현생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 관점을 넘어서서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다루는 지구과학, 땅속의 구성요소를 다루는 지질학, 인류의 탄생과 자연이용, 문화창출을 다루는 고고학, 인류의 제반문제를 다루는 인류학, 인간의 생활사와 사고를 다루는 민속학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의 확장과 인식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가질 때 자연과 인류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하고,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자연이나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함께 어떻게 앞날을 설계해 나아 갈 것인지에 대해 과학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이 인간복제의 꿈에 바탕하듯이 우리 자신, 곧 인류의 탄생과 진화와 행위를 다루는 인류과학관, 박물관이 하루빨리 등장하여 공룡과 로봇의 부러움을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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