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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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에서 벗어나기

  • 승인 2006-01-0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지난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해 가장 괜찮은(?) 유행어라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가 무슨 시대정신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이 영화가 그렇듯이 이 말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생각이나 평가에 따라 형성되는 객체적 개념(Me)이 아니라 주체적인 반응(I)을 환기시키기나 한 것처럼 오해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자기 일이나 잘하고 남의 일에 참견 말라는 참으로 편리한 이 말은 자기도취와 자기맹신의 함정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상대방의 변화만을 요구하며 뒤로 숨을 때 유용했던 만큼 더 가혹하고 더 잔인하고 더 통렬한 세태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절대 진리도, 절대 오류도 있을 수 없다. 성선설과 성악설 둘 다 진리일 수도 있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말똥을 무슨 보물인 양 굴리는 말똥구리에게는 말똥이 여룡이 물고 있는 여의주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내가 가는 길만 길이 아니 않은가. 백로를 보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보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 우리들 아니었던가. 친절하게 보일까봐 시뻘건 아이섀도를 칠하고 상대를 전율하게 하지는 않았던가.
지난 연말이었다. 서울 S여대 앞을 지나다가 '세계최대 인권유린 국가 미국, 너나 잘하세요'라는 피켓을 봤다. 어떤 측면에선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문 말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반목의 한 해를 만든 위험한 말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똑같이 들기도 했다.

생각하기 싫어도 황우석 교수의 경우를 보자. 그를 어린 왕자가 두 번째 별에서 만난 허풍선이처럼 만든 것은 우리들이었다. 그를 통해 부풀려진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아집이 거짓과 참을 구분하지 못하고 "너나 잘하세요"의 대열에서 자기합리화의 맹신에 빠뜨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인기 있을 때 구름처럼 몰려들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윤리고 뭐고 신경쓰지 말고 연구에만 전념하라고 기세 좋게 붓방아를 찧어대던 논객들이여! 다 어디로 갔는가.

교수들이 지난 을유년을 결산하며 뽑은 고사성어는 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라는 뜻의 상화하택(上火下澤)이다. 온오프를 넘나들며 교(交)와 통(通)이 없는 분열과 상극이 있었던 우리 사회를 비교적 잘 압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 불이 아래쪽에서 타오르고 처지는 경향이 있는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야 화합할 것인데 말이다.

병술년 새해 아침해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에 참으로 영웅이 태어나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봤다. 마하트만 간디가 말했듯이 인간이 무너지고 사회가 파괴는 요인으로 지적한 것들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다. 노동이 없는 부, 양심이 없는 쾌락, 인격이 없는 지식, 윤리 없는 기업, 인간 존엄이 무시된 과학, 희생 없는 종교, 신념이 없는 정치 지도자가 우리 사회를 삭막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잘하는 데 남들이 문제라는 '네 탓이오' 의식은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64.3%가 자신은 법을 지킨다고 답한 데 비해 다른 사람도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이 지키지 않아서'라는 답이 25.1%로 가장 많았다. 법을 어기는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는 의식의 저변에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는 생각, 너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상화하택이 된 것이다. 지난해의 당돌벌이(黨同伐異)가 그대로 상화하택으로 치환된 것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친절한 금자씨처럼 사회적인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방식과 가치관대로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리라. 오블리주는 안하고 노블리스만 되려 하기 때문이리라. 평생 모은 재산을 쾌척해 노블리스는 아니지만 오블리주를 다한 김밥 할머니와 폭설 복구 현장에서 증명사진 촬영에 급급한 국회의원은 하나의 대조를 이룬다.

불기운은 밑으로 쏠리고 음기는 위로 솟구쳐야 세상이 편안해진다. 맥아더 동상 철거, 강정구 발언, 연정(聯政), 사학법, 줄기세포, 이 모든 논란에는 주로 상화하택만이 있었다. 영국 계관시인 오든의 시구처럼 '법을 사랑처럼(Law like love)' 여기고 '법대로 하자'라는 말이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말이 될 때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도 선의로 받아들여질 것인데 그도 아니었다.

나비의 찬란한 날갯짓을 보려면 두세 마리의 벌레쯤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분노와 복수의 집단광기에서 벗어나야 하늘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양 날개가 되는 것이다. 비난의 화살에서 자신을 제외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충고에 되붙이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냉소적 대사에는 '그래 너 잘났다'라는 말이 따라오기 일쑤다.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은 병립적 동위개념으로 '함께 잘합시다'가 되어야 한다. 방금 죄수복을 벗은 예쁜 금자씨에게 두부를 내미는 전도사에게 내뱉는 "너나 잘하세요"는 눈 위에 뿌려진 피처럼 섬뜩하다. 우리 모두 너무 깊은 내상을 입었다. 앞으로의 새 날은 상화하택이 하화상택(下火上澤)이 되고, 하늘과 땅이 평화롭게 어울리는 천지교태(天地交泰)가 되어, 더도 덜도 말고 '이영애적' 범주를 넘어서는 병술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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