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더 묻지 못하고 그 대목만 나오면 뜻도 모른 채 ‘동물원 사진관’하고 불렀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 제자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지요. “노래 중에 ‘동물원 사진관’이라는 대목은 무슨 뜻입니까?” 그 제자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뜻도 모르고 흉내 낸 반평생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동물원 사진관’은 ‘동불암서진관(東佛岩西津寬)’을 잘못 발음한 것으로, ‘동쪽에는 불암사 서쪽에는 진관사’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책 속에서 발견한 이 이야기는 우리음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정가 (가곡 시조 가사) 혹은 단가나 판소리 그리고 잡가 등 전통성악 각 부문의 노랫말 중에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한시(漢詩) 또는 고사(故事) 등을 모르고서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현대의 언어문화코드로는 이해 불능한 한문 투의 노랫말들이 즐비하지요. 그것들의 대부분은 4서 5경을 비롯한 고전(古典)과 역사서, 그리고 문학에 조예가 깊어야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한자문화권의 주인공 중 하나인 우리의 지식층이 늘 쓰던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듣는 이는 물론이고 부르는 이조차 그러한 구절들의 뜻을 잘 모릅니다. 고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은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노랫말의 의미를 알려고 마음 쓰기보다는 오직 성악기량에만 가치를 부여하려는 조급한 생각이 판을 치니 그럴 수밖에요. 사정이 이러하니, 미리 살펴야 할 쉽지 않은 어휘들을 엉뚱하게 발음하여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 왜곡된 발음이 앞뒤 맥락에 꿰어 맞춰져, 어떤 구절들은 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표현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넓은 세상에 접근하기 힘들 듯이, 예전에는 한문을 모르고서는 세상을 들여다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옛 사람들의 표현방식을 알지 못하면, 결국은 세대 간의 단절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무형문화의 유실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큰 눈을 갖기 위해서는 ‘공시태(共時態)적’뿐만 아니라 ‘통시태(通時態)적’ 고찰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고금(古今)의 날줄과 씨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전통성악 부문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노랫말에 대한 자구(字句) 해설 및 역사적·문학적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며, 부르는 이와 감상하는 이는 모두 그러한 내용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노래는 우리의 수준 높은 문·사·철(文·史·哲)과 음악의 혼융체(渾融體)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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