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노랫말을 공부합시다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중도춘추] 노랫말을 공부합시다

  • 승인 2005-12-30 00:00
  • 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
산타령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제자가 질문을 합니다. “노래 중에 ‘동물원 사진관’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동물원에 사진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선생이 버럭 화를 내며, “아니 이 사람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배우면 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하고 소리칩니다.

제자는 더 묻지 못하고 그 대목만 나오면 뜻도 모른 채 ‘동물원 사진관’하고 불렀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 제자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지요. “노래 중에 ‘동물원 사진관’이라는 대목은 무슨 뜻입니까?” 그 제자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뜻도 모르고 흉내 낸 반평생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동물원 사진관’은 ‘동불암서진관(東佛岩西津寬)’을 잘못 발음한 것으로, ‘동쪽에는 불암사 서쪽에는 진관사’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책 속에서 발견한 이 이야기는 우리음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정가 (가곡 시조 가사) 혹은 단가나 판소리 그리고 잡가 등 전통성악 각 부문의 노랫말 중에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한시(漢詩) 또는 고사(故事) 등을 모르고서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현대의 언어문화코드로는 이해 불능한 한문 투의 노랫말들이 즐비하지요. 그것들의 대부분은 4서 5경을 비롯한 고전(古典)과 역사서, 그리고 문학에 조예가 깊어야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한자문화권의 주인공 중 하나인 우리의 지식층이 늘 쓰던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듣는 이는 물론이고 부르는 이조차 그러한 구절들의 뜻을 잘 모릅니다. 고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은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노랫말의 의미를 알려고 마음 쓰기보다는 오직 성악기량에만 가치를 부여하려는 조급한 생각이 판을 치니 그럴 수밖에요. 사정이 이러하니, 미리 살펴야 할 쉽지 않은 어휘들을 엉뚱하게 발음하여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 왜곡된 발음이 앞뒤 맥락에 꿰어 맞춰져, 어떤 구절들은 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표현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넓은 세상에 접근하기 힘들 듯이, 예전에는 한문을 모르고서는 세상을 들여다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옛 사람들의 표현방식을 알지 못하면, 결국은 세대 간의 단절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무형문화의 유실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큰 눈을 갖기 위해서는 ‘공시태(共時態)적’뿐만 아니라 ‘통시태(通時態)적’ 고찰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고금(古今)의 날줄과 씨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전통성악 부문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노랫말에 대한 자구(字句) 해설 및 역사적·문학적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며, 부르는 이와 감상하는 이는 모두 그러한 내용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노래는 우리의 수준 높은 문·사·철(文·史·哲)과 음악의 혼융체(渾融體)이기 때문이지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