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문화체육부장 |
현지 가이드 왈 ‘인도네시아는 각종 천연자원이 풍부해 게으름을 피워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작은 나라 한국은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어설픈 우리말을 늘어놓는 그의 마음속에는 ‘가진 것도 없는 나라에서 무얼 믿고 그리들 오만하냐’는 의미가 숨어있는 듯했다. 인도네시아 가이드의 이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의 머리를 무겁게 하고 있다.
올해 들어 휴대전화 1억 대 생산 기록을 세운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부문의 이기태 사장은 얼마 전 한 모임 자리에서 ‘후배들을 생각하면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장래를 걱정하는 말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면 경쟁대열에서 언제든지 낙오할 수 밖에 없다는 긴박감이 담긴 최고 경영자의 우려 어린 목소리다. 경제가 수년 동안 바닥을 기고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 시점에서 그 같은 우려가 어디 정보통신 부문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지난 1년 동안 이 땅에서 펼쳐진 일들을 되돌아 보고 다가오는 한 해를 떠올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두 다리 펴고 제대로 잠들기 조차 편치 않을 것이다.
이는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선정한 상화하택(上火下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있다. 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니 사회 전체가 분열됐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취모멱자(吹毛覓疵:살갗의 털을 뒤져 흠집을 찾아낸다) 즉, 상대방의 작은 허물을 찾아내 비난하는데 열을 올린다는 의미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말까지 등장할 정도다. 이것이 바로 올 한해 한국호의 자화상인 것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의 연구와 실험 속에서 모든 원리가 규명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져 왔던 과학적 성과물 마저 진실 논쟁에 휩싸여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충격과 혼란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허물들을 떨쳐버리고 또 다른 각오로 새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새 해에는 분열, 비방, 거짓, 아집의 집단 한국호에서 탈피해 화합, 격려, 진실, 양보, 겸손의 집단 한국호를 그려보자. ‘가진 것도 없는 나라에서 무얼 믿고 그리들 오만하냐’는 인도네시아 젊은 가이드의 일침을 머릿속에서 되새김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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