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당구공을 치면 맞은 공이 다른 공을 연속해서 치듯이 일어나는 현상을 빌리어드 효과라 한다. 연쇄반응, 파급효과, 도미노 현상 등으로 불러도 좋은데, 여기에 착안해 자동차가 건강산업을 촉진시킨다는 가설을 만들어 본다.
가령 이런 것이다. 자동차가 생기면 걸어가도 될 곳도 굳이 차를 타고 간다. 필지의 사실로 운동 부족이 되거나 뚱뚱해지며 또 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그때부터 스포츠센터에 나가거나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 건강산업이 돈을 번다는 얘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말 많은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 일단 원안대로 어제 의결됐고 공포 후 대체입법으로 보완한다는 소식은 해프닝에 다름 아니었다. 얼마나 체면을 살리고 입법부가 존중됐는지는 몰라도 모양은 우습게 됐다. 이 일련의 한심한 소통 방식이 잘못된 빌리어드 효과를 유발하지나 않을까. 묵묵히 애쓰는 하위직 경찰관들의 사기는 꼭 챙겨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소신임에도 그게 은근히 걱정이다.
우선 제도적인 측면에서 순경, 경장의 근속승진 기간을 단축하고 경사가 특별승진, 승진시험, 심사승진을 안 거치고 간부인 경위 계급장을 단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이며 꿈이며 인사의 일대 혁신처럼 보인다. 경위로 승진하려는 길목의 심각한 병목현상을 해소할 수도 있겠다. 특히 하위직에게는 수사권 조정보다 근속승진이 보다 실질적인 관심사였던 게 사실이다.
연금법에 비춰봐도 8급 상당인 경사 이하가 80%를 넘는 기형적 구조여서 각종 연금혜택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따라서 비간부의 승진 기회 확대는 상대적 박탈감 해소 차원에서 이래저래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간부인 경위를 양산한 결과 예견되는 부작용을 일부러 모른 체할 수는 없다.
개정안을 기준으로 하면 내년 한해 경장, 경사, 경위로 근속 승진 혜택을 보는 인원이 2만2000여명이다. 경위로 자동 승진하게 되는 케이스도 4000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매년 신규 경위 임용자가 400명 안팎이라 그러잖아도 총포경(총경을 포기한 경정)이나 조진조퇴경(주로 고시나 경찰대 출신으로 일찍 진급하고도 진급 벽에 막혀 40대에 퇴직하는 경찰)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조직 불균형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이상처럼 들리겠지만 장기 과제로 선진국 경찰처럼 과도한 인사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으로 결국 가야 한다. 현행 피라미드형인 11계급을 줄여 간부와 비간부의 간격을 좁히면서 직위보다 역할 위조로 재편하는 것이 상책이다. 대안에서는 근속승진의 근본 뼈대는 살리되 다른 직종 공무원들의 인사 또는 조직 규정과 비슷하게 일치시키는 것도 물론 한 방법이다. 이 역시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거부권을 들먹이게 만든, 막대한 재원 마련 부분이다. 개정안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치면 내년 264억원을 시작으로 5년간 300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소방직과 교정직 등 유사직종으로 확대하면 향후 5년간 1조8000억원이 든다는 계산은 정부가 자인하는 바다. 전혀 예기치 않은 빌리어드 효과가 꼬리를 물면 좋은 사람만 좋아지는 승진잔치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른 각도에서는 경위부터 구속영장 신청이 가능한 사법경찰관이 되면서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민감한 사안이 될 듯싶다. 아무튼 한번 악순환의 시스템이 작동하면 특단의 조치에도 목적과는 반대의 결과가 발생한다. 제도화의 패러독스다. 당장은 대체입법을 약속한 마당이니 이전의 졸속을 충분히 벌충해야 할 것이다. 빌리어드 효과 중 가장 잘못됐을 경우를, 최소한 맨 처음 퉁겨나가는 공의 중요성을 생각하라는 취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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