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바람까지 어느 방향에서 부는지 갈피를 못 잡을 만큼 살갗을 파고들었던 아침. 평소보다 아이들이 늦게 등교하나보다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수업 1교시가 가까워도 7명의 여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아이들 말로는 우리 반 여자 아이 실내화 한 짝이 없어져 그것을 찾는다고 학교 옆 구봉중학교까지 담을 넘어갔다고 했다.
씩씩한 남자 아이 2명이 찾아오겠다고 나서자 “그만둬. 이놈들, 언제 들어오나 들어오기만 하면 혼쭐을 내줘야겠다” 하고 말렸다. 당장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동요의 빛을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갔으니 설마 별일이야 있을까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여자아이들은 결국 1교시가 다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눈 속에 풍덩 빠진 모습에 화내기는 커녕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냥 모른 척하고 다음 시간 수업을 했다. 이 녀석들도 속은 있었던지 숙연한 마음으로 수업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이날 하루는 선생님이나 아이들 모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소설에 나오는 ‘마지막 수업’못지않은 분위기로 수업에만 온힘을 쏟았다. 선생님은 없어진 아이를 진작 찾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을 수업에 실렸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께 말도 하지 않고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것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을 수업에 실어 요사이 보기 드문 수업 분위기를 연출하며 서로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여느 때처럼 집에 돌아와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 우리 반을 나간 7명의 여자 아이들이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감격인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건지 모를 기분으로 한동안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했다. ‘역시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한 수 위다. 이걸 애교로 봐줘야 하나, 우정으로 봐줘야 하나. 참 고민스럽네. 내가 너희에게 올 1년 동안 참 많이도 배운다.’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죄송해요. 선생님, 문정이가 실내화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찾아보았지만 전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친구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우린 오늘 아침 어려운 시간을 함께 나눈 거예요.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오늘 온몸으로 실천하고 왔답니다. 역시 배운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고도 재미있었어요. 선생님께 엄청 혼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용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선생님 마음 힘들지 않게 할게요. 사랑해요. 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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